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6)
1) 이른 봄 (5)
‘In einem kühlen Grunde’의 원제목이 ‘부서진 반지’, ‘깨진 반지’라고 했습니다.
변함없는 물레방아와 같을 거로 생각했는데, 사랑은 그림자로 변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한탄도 합니다.
어디서 당신을 찾을 수 있나요 하고.
사랑의 증표를 간직하고 있지만 헤어진 뒤 두 쪽이 되고 말았다고 한숨짓습니다.
푸른 벌판 저 아래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레방아처럼 영원한 사랑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증표로 반지까지 받았는데 이별을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상황에 닥치자 앞이 캄캄해집니다.
주저앉아 두 쪽이 된 반지를 바라봅니다.
영원할 거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아픔은 고스란히 헤어진 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결과도 그가 감수해야 합니다.
저 아래 물레방아를 그려보지만, 신기루가 되어 사라집니다.
신기루는 연인 모습을 합니다.
참된 사랑이었다고 위안하고 합리화해보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픔과 두 쪽 난 반지뿐입니다.
맹세도 함께 할 때나 가치가 있었지 각자가 된 뒤에는 추억 나부랭이로 전락합니다.
처지를 깨닫고 신세타령을 시작합니다.
음유시인을 등장시킵니다.
음유시인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거처가 없으며 식솔도 따르지 않습니다.
걸어 돌아다니는 게 일이며 편해 보이는 곳이 잠자리입니다.
떠들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웃는 게 대안입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고 어디에 묻힐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을 잃고 슬픔에 빠져 넋을 잃고 헤매기를 한창입니다.
자신을 음유시인에 빗대 허탈함을 말합니다.
음유시인의 거짓 웃음, 음유시인의 불확실성, 음유시인의 방랑이 자기 몫인 양 자책하고 자학합니다.
결국,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겠지 하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합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초라하고 누추해 보인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제 그는 가진 것 하나 없습니다.
사랑 그리고 반지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나브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눈치도 채지 못했습니다.
허탈함에 추억을 떠올리지만, 가슴만 더 아플 뿐입니다.
넋두리가 이어집니다. 떠돌이 심정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잊고 방랑자, 나그네, 집시가 되어 말 그대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이제 그는 바람에 쓸려 하얗게 버짐이 핀 얼굴,
햇볕에 시커멓게 탄 목덜미,
목마름에 퀭하니 들어간 눈두덩이,
빗자루같이 삐져나온 콧수염,
삽살개 저리 가라 더부룩한 머리,
밥풀같이 튼 입술,
잘 마른 명태가 형님 할 것 같이 불거진 광대뼈,
옥수수만큼 누런 이,
용수철을 떠오르게 하는 목,
그의 몰골은 형편없고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떠돌이 음유시인에서 전쟁터 군인으로 상황이 급변합니다.
말을 타고 전쟁터를 달립니다.
피투성이로 변한 그곳에서 밤낮 고통을 겪습니다.
감성의 세계에서 이성의 세계로 넘어옵니다.
피와 살이 튀는 현장입니다.
마음속 고통에 육체의 고통이 더해집니다.
날아드는 탄환과 포탄에 영혼이 뒤틀립니다.
살육의 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비명에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전우가 싸늘한 주검으로 널브러져 있습니다.
하지만 시체 수급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닥친 문제는 당장 살 수 있느냐 입니다.
인간의 말살, 인격의 황폐, 존엄의 상실, 목표의 불확실, 생사의 갈림길, 살육의 무신경, 광기의 발현, 살인의 무책임, 명령의 갈등, 승패의 모순, 옳고 그름의 차이, 그는 피투성이 속에 서 있습니다.
음유시인을 거쳐 군인으로 자학을 일삼습니다.
연인을 떠나보낸 그에게 지금, 현재는 갈 곳, 머물 곳 없는 세상이요 생사가 불확실한 전쟁터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다시 물레방앗간으로 몸과 마음을 돌립니다.
예전 물레방아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합니다.
그 소리를 물레방아 속삼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때를 잊고 일상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 묻습니다.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게 괜찮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잘 될 거라 거듭 다짐합니다.
떨치고 평안했던 시절이 올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