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13)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2)
지금 크눌프에게 예전 기운을 찾기 힘듭니다.
오만할 정도로 뻣뻣했던 턱주가리가 목젖에 닿을 지경입니다.
부리부리하던 눈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사람들하고 말은 잘하는데 반응이 전과 다릅니다.
박수가 잘 안 나오고 곧 싫증을 냅니다.
크눌프 본인도 집중을 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며 맞는 말이야?
저게 말이 돼?
반문합니다.
직행으로 목적지까지 무정차 했는데, 이제 정류소 다 거치는 완행으로 바뀌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멀어지면 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원수(怨讎)나 적(適)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가를 받는 크눌프, 그에게 굴욕적인 일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고민을 합니다.
두려움을 느낍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혹시 자기 생각이 개똥철학이 아닐까 의문을 품는 것도 이즈음입니다.
사람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이야기가 먹히는지, 듣기나 하는지 파악이 안 됩니다.
등장만으로 껌뻑 죽던 사람들이 본체만체 반응이 시원치 않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그저 내키는 대로 떠돌아다녔습니다.
밤이 되면 아무 대나 누워 잤습니다.
격식 차릴 건더기가 없었습니다.
행색을 문제 삼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말을 꺼내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해왔고 그게 크눌프의 삶 대부분이었습니다.
욕심 부린 거 없습니다.
가끔 오만하거나 잘났다고 떠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남들도 다 그렇지 않으냐고 넘어갔습니다.
크눌프 일상에서 바뀐 건 하나 있습니다.
크눌프가 하는 말, 크눌프가 남긴 글, 크눌프가 한 행위 모두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누군가’의 글을 통해 남겨지고, ‘누군가’의 눈을 통해 목격됩니다.
다시 말해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첫 번째 장 ‘이른 봄’의 주인공은 누가 보더라도 크눌프이었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이끌었고,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장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에 와서는 이야기를 이끄는 주체가 ‘나’입니다.
크눌프는 ‘나’를 통해서 말을 하고 행위를 합니다.
‘나’는 크눌프의 전달자로 그를 자세히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깁니다.
크눌프는 독자에게 자신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거쳐야 말이 되고, 기록이 되고, 목격됩니다.
나 이런 말을 전하고 싶소, 전달자에게 남깁니다.
그러면 전달자가 뭔 내용인지 훑어봅니다.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나’를 통해 공표합니다.
만약 문제의 소지가 발견되면 되돌려 보내거나 수정을 합니다.
수정은 ‘나’를 기준으로 합니다.
‘나’의 성에 차지 않을 시 다시 수정해야 합니다.
‘나’는 크눌프의 전갈에 확인 도장을 찍어 절차를 마무리합니다.
좋은 시절이 떠나가 버린 겁니다.
이제 그는 말을 함부로, 직접 할 수 없는 신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