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눌프 23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by 초록 라디오

2. 소설 [크눌프] (17)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6)


② 지식의 두려움 (1)

크눌프의 머릿속 지식은 학자가 될 만큼 충분하고 훌륭했습니다.

그 당시 ‘나’도 크눌프의 말에 감히 토 달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빼먹고 적을까 걱정할 지경이었습니다.

크눌프의 견해는 설득력이 있었고, 전달력 또한 충분했습니다.

‘나’는 그를 ‘당신은 사상가나 교수가 되어야 했습니다’로 받아들였습니다.

검열관의 호평에도 크눌프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크눌프의 지금 심정은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누구에게 시원히 털어놓고 싶습니다.

화병이 생길 것 같습니다.

크눌프는 두렵습니다.

자기 생각이 옳은 것이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그이기에 이번 지식의 혼란은 두려움의 강도가 더 셀 수밖에 없습니다.

시체를 숨기기 가장 좋은 장소는?

나무를 숨기기 가장 적절한 곳은?

답은 전쟁터와 숲입니다.

상처가 상처를 숨기고 대상이 대상을 품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시체는 다반사로 눈을 속일 수 있고, 숲속 나무는 자연스러운 조화로 판단을 흐립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말을 숨기기 가장 좋은 방법은?

말에 묻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말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한 생명이 한시적입니다.

상대방의 말은 머리를 거쳐 의미가 생깁니다.

의미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과정이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말은 조심히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세뇌의 도구로 이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말은 인간의 의미 전달방식입니다.

사건의 시작이 말이며 사건의 중재, 마무리 역시 말로서 끝을 맺습니다.

말을 짧고 굵게 하는 게 좋은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것저것 갖다 붙여 길게 늘이는 식의 말은 서로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말은 참이 될 수 있고, 안타깝지만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모양새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