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19)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8)
② 지식의 두려움 (3)
두 번째 장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에 들어서 말이 더 많아졌습니다.
마치 작정하고 길게 늘이는 것 같았습니다.
한때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는 푸념으로 들리곤 합니다.
나 이런 사람이야 탄식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나 배운 사람이야, 잘난 체해 볼썽사나울 적도 있습니다.
말이 말을 먹어 뭔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싸한데 정작 무엇을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기 이야기로 시작해 남의 탓으로 끝나는 바람에 맥 풀린 적이 있습니다.
저 앞에서 실컷 떠들고 여기까지 와서 그칠 줄 몰라 난감했습니다.
집중하려 해도 말이 산으로 갑니다.
질문하면 맥 끊긴다고 되레 화를 냅니다.
‘나’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이어지는 겁니까?
앎이란 스스로 갖추는 것이라 합니다.
지식은 본인의 문제라 말합니다.
‘나’의 ‘당신은 사상가나 교수가 되어야 했습니다’라는 적절한 비유이었습니다.
이 말은 크눌프를 불편하게 했을 겁니다.
크눌프의 말은 자기 지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알고, 누구보다 전달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현실에서 그의 지식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 정도는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에게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말발 또한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말에 대한 두려움에 이어 지식의 두려움이 그를 떨게 합니다.
지식의 두려움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을 경우 껍데기가 벗겨지고 맙니다.
민낯을 보이고 맙니다.
그렇기에 지식은 상대성 기질을 갖습니다.
만만한 상대는 말발이 먹힙니다.
여기저기 끌어다 있는 척 상대를 속일 수 있습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볼 때는 지식으로 무릎을 꿇립니다.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혼쭐을 냅니다.
해볼 만한 상대는 말로 지치게 한 뒤 결정타를 먹입니다.
장기전, 체력전으로 버티기 작전을 씁니다.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상대나 버거운 상대가 나타나면 뒷걸음질로 자취를 감춥니다.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승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두려움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대응방식을 달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