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눌프 26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by 초록 라디오

2. 소설 [크눌프] (20)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9)


② 지식의 두려움 (4)

‘나’는 해볼 만한 상대이었습니다.

크눌프의 말이 이어집니다.

들었을 때 모두 그럴싸합니다.

말도 잘하고 내용도 수긍이 갑니다.

‘나’는 크눌프에 호감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의 말에 관심이 갑니다.

지식인 크눌프가 달리 보입니다.

좋은 친구를 만난 듯합니다.

하지만 크눌프의 생각은 다릅니다.

‘나’가 말에 동조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말로 설득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 말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가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합니다.

화자(話者)는 크눌프 본인 한 명이어야 했습니다.

‘나’가 화자일 경우 쓸 수 있는 지식이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생각에 걱정이 앞섭니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언어, 언어가 만들어내는 문장, 문장이 엮는 논리, 논리가 쌓인 사상에 의문을 가졌기에 두려움이 커집니다.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감이 ‘나’의 개입으로 탄력을 잃고 맙니다.

대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지식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땀이 흐릅니다.

언어, 말, 문장, 논리, 사상 모두 찌그러져 제 모습을 잃습니다.

두려움에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릅니다.

크눌프의 어깨가 한없이 처집니다.

한때 지식으로 위풍당당했던 크눌프입니다.

그랬던 그가 두려움을 느끼고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를 대변했던 말과 지식에 거꾸로 기가 꺾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