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21)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10)
③ 관계의 두려움 (1)
크눌프 주변으로 사람이 모였습니다.
크눌프는 늘 주인공 역할을 맡았습니다.
나서지 않아도 저절로 주인공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손사래를 치던가, 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런 관계를 즐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쌓인 관계가 반복되자 관행이 되고 권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크눌프는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관계의 주인공에 오릅니다.
이 동네, 저 동네 가릴 것 없이 크눌프는 주인공으로 행사를 이끌고 대화를 주도합니다.
갈등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이른 봄을 맞자 크눌프의 주변 상황이 바뀝니다.
위풍당당하던 크눌프의 기세가 꺾이며 민낯이 드러납니다.
그의 생각이 개똥철학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에 자신감을 잃습니다.
두려움이 일고 크눌프 신상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에 대한 두려움, 지식의 두려움이 크눌프를 괴롭힙니다.
여기에 관계의 두려움이 더해집니다.
관계는 인간 사회의 질서입니다.
인간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질서가 존재합니다.
질서는 관계로 형성됩니다.
질서의 안정성은 인간 사회의 균형에 영향을 끼칩니다.
균형은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긴장감은 인간관계에 동기를 부여합니다.
동기는 질서에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관계는 동적(動的) 보다 정적(靜的)인 성격이 강합니다.
관계는 현상 유지에 더 신경을 씁니다.
관계는 깨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무너지지 않으려 관계 단속을 철저히 하게 됩니다.
균열은 한번 작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되는 게 일상입니다.
관계는 균열을 피하려 노력합니다.
주위 사람들을 편으로 만들어 신뢰를 쌓습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균열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관계와 균열은 같이 움직입니다.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균열의 징조이며 균열이 생긴다는 것은 관계가 활발하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균열은 보이지 않습니다.
관계에 신경 쏟을 뿐입니다.
관계를 쌓으면 끝이라 생각합니다.
위만 보려 합니다.
균열은 오기 마련입니다.
떨어지는 감 먹겠다고 온종일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균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관계의 뒤틀림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위치, 지위가 흔들리고 명예를 더럽힌다고 생각합니다.
크눌프 역시 관계의 뒤틀림과 관계의 두려움에 불안감을 여실히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