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36)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25)
⑤ 음악과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6)
3. 나그네 (대금)
세 번째 곡은 ‘나그네’입니다.
국악기 대금이 나그네 가는 길 친구가 됩니다.
황천길 동무로 조금이나마 무게를 덜어주려 합니다.
크눌프는 이른 봄 이후 나그네 신세를 벗지 못했습니다.
‘나’를 만난 건 잠깐일 뿐, 크눌프는 나그네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입니다.
유랑자, 낭인, 방랑자라고도 합니다.
떠돌아다니는 게 천성인 사람을 자리 앉히는 건 힘든 일입니다.
도움을 줄 수 있을망정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나그네에게 묵을 곳을 주며 눌러 살라고 한들 들을 리 없습니다.
옆에서 밥 한 술 같이 뜨는 것이 마음 주는 일입니다.
돕는다고 이거저거 간섭하면 한도 끝도 없을 뿐입니다.
나그네는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돕는 것입니다.
가는 길 함께 걷는 것으로 족합니다.
노래 ‘나그네’가 그렇습니다.
뭐라 말하지 않습니다.
네 갈 길 가라고 뒤로 물러섭니다.
알아서 가겠다고 고갯짓 합니다.
소리가 멀어지면 그렇게 알라고 합니다.
대금은 애초부터 나대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음색이 가는 길 보듬는 일에 적합했습니다.
크눌프에게 어깨를 빌려줍니다.
나그네여, 내 어깨를 빌게나 하고 말입니다.
나그네의 마음이 움직이는 듯 보입니다.
황천길이 힘들었습니다.
검게 탄 삼베 버선발이 불편한 것도 이유이었을 것입니다.
대금 소리가 기시감으로 크눌프를 움직입니다.
대금은 딱히 별다른 음색이 없을뿐더러 어디선가 들어봤음 직한 익숙함을 갖고 있습니다.
낯선 이방인이 대금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것에 이러한 사유가 있습니다.
나그네가 대금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대금이 속을 가라앉히라고 음을 떨어뜨립니다.
크눌프의 마음이 찰나 움직입니다.
나그네가 숨을 고릅니다.
나그네와 대금이 동무가 되고 크눌프와 대금이 친구를 먹습니다.
나그네 눈에 황천길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통한 대금이 소리로 떠나자 눈치 줍니다.
나그네 크눌프가 길을 떠납니다.
뒤에서 대금이 눈물을 훔칩니다.
대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뒤에서 볼까 봐 크눌프도 마른 눈물을 닦습니다.
대금이 나그네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삼베 버선발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멀어져 가는 나그네 잘 가라고 대금이 소리를 높입니다.
황천길이지만 동무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