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눌프 48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by 초록 라디오

2. 소설 [크눌프] (42)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31)


⑤ 음악과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12)


8. 풍물 1989 (1)

여덟 번째 곡 ‘풍물 1989’는 한판 노는 자리입니다.

크눌프가 한숨을 쉬고 나그네가 천근만근 몸뚱이를 내려놓습니다.

굿판이 끝나면 동네잔치가 벌어집니다.

상을 가득 채운 제사 음식이 잔치 음식으로 바뀝니다.

발이 되도록 빌었던 손으로 허기를 채웁니다.

목마름을 퇴주로 해소합니다.

무거웠던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달아오릅니다.

걱정 근심 내려놓고 잔치를 즐깁니다.

하얀 고깔 접어 봇짐에 넣고 무리 속으로 들어갑니다.

가는 이는 가는 이이고 남은 이는 남은 이이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법입니다.

노는 자리에 남녀 구분 없습니다.

풍물패가 신나게 두들기고, 곡하던 이가 시원하게 창을 잇습니다.

황천길이 어디고, 한이 대수인가, 나그네란 세상천지에 널렸거늘, 슬픈 소리가 사방천지네, 외길이 웬 말인가, 가고파라 한들 달라지는 게 있는지, 갈등은 여삼추(如三秋)로 함께 하는 걸, 잊고 즐기라 떠들고 놉니다.

크눌프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여기서 그의 통과의례는 완료되었습니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왼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틀 수 있고, 왼쪽을 몇 번이고 꺾는 예도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습니다.

떠난 이는 떠난 이로 대접하는 게 도리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 다시 올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를 그리워할 필요 없습니다.

머지않아 다른 나그네가 나타날 것입니다.

임아, 대금을 멈추지 말아 주시오.

회색 소리로 이 자리를 빛내주시오.

임아, 날라리에서 입 떼지 말아 주시오.

날라리가 흥을 물어온다는 사실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하오.

임아, 창을 좀 더 끌어주소서.

비극(悲劇)이 희극(喜劇)과 한 몸이라 하지 않았소.


굿판을 망각(忘却)의 장치라고들 합니다.

굿판 제사상에 오른 자는 잊힐 운명입니다.

굿판이 시작되면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황천길로 갈지, 노 저어 갈지, 맹수의 등을 빌릴지 당사자는 모릅니다.

첫발을 디디는 순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가자면 가야 합니다.

남은 자는 떠나는 자를 잊어야 합니다.

떠나는 자는 남는 자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욕심에 정처 없이 구천을 떠도는 잡귀가 되기도 합니다.

망각, 잊힘은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남은 자는 아쉬움을 털어 좋고, 떠난 자는 몸이 가벼워져 좋습니다.

털어 관계를 정리합니다.

허기가 몰려옵니다.

굿판이 잔치로 바뀝니다.

먹고 즐기고 노는 것입니다.

퇴주잔이 술잔으로 둔갑합니다.

시루떡으로 배를 채웁니다.

징이며 꽹과리며 북이며 장구며 어울려 흥을 돋웁니다.

귀가 따갑고 입이 분주하고 손이 바쁩니다.

풍물에 흥겨워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나그네가 보일 성싶으면 손들어 인사합니다.

가는 이 보낼 때 잘 잊는 것도 복이라 했습니다.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