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4)- 퇴근하기

by 초록 라디오

“휴.”

버스 좌석에 앉으며 짧게 내뱉었다. 힘든 하루였다. 정신 차리니 회사였다. 버텼다. 아무 생각 없이 버텼다. 점심도 걸렀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 보는 척하며 버텼다. 퇴근시간이 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가자. 후....”

고개를 들어 버스 천장을 바라보았다. 좌우로 흔들어 목을 풀었다. 뻣뻣했다. 빨리 가서 자자.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음악파일을 재생했다. 이정선의 노래가 나왔다. 이 양반, 참 잘하지. 웅얼웅얼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봤다. 반대편에 사고가 났다. 1차선에서 달리던 택시하고 중앙선 넘어 역주행하던 오토바이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붕하고 날아 도로에 떨어졌다. 눈이 소만큼 커졌다. 주변이 삽시간 정적에서 괴성으로 바뀌었다.

“끽, 끽, 쾅.”

차들이 급정거하며 여기저기 사고가 일어났다. 오른손으로 창문을 짚었다. 얼굴이 뚫고 나갈 듯 창문에 바싹 붙었다. 버스에 비명이 났고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 주목이 한 곳에 쏠렸다.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 가게에서 물건 사던 사람들, 버스에 탄 사람들, 자가용에 탄 사람들, 지하도에서 올라오던 사람들,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 식당에 서 밥 먹던 사람들 모두 사고 현장을 바라보았다. 입으로 각기 뭐라고 떠들어댔다. 여기, 저기, 사방팔방 소리가 나왔다. 소리가 점점 커졌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더해졌다. 앰뷸런스 소리가 저 어디선가 들렸다.

“빵, 빵.”

“앵. 앵.”

놀란 심장이 진정되고 자리를 추스르는데 한 곳에 박혀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깜짝 놀랐다. 다들 입을 벌리고 사고 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헛기침을 하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 어떡해.”

“어이쿠, 큰일이네.”

“운영이냐? 야, 여기 사고 났어. 씨, 택시하고 오토바이 하고 박았어. 으하.”

창밖에서 시선을 거둔 승객들은 자기 자리로 가며 스마트폰에 몰두했다. 두두두.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았다. 두두두. 사방에서 자판 누르는 소리가 났다. 사고 현장을 보며 떠들던 관심이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전이되었다. 누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통화하며 사고 장면을 전했다. 하나둘 통화가 줄을 이었다. 버스에 뉴스센터가 차려진 느낌이었다. 호들갑, 비명, 웃음, 훈계. 통화가 지속되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통화내역이 다 들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고 현장에서 사고 전황으로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들 특파원이 되어 청취자에게 사고를 보고했다. 버스 기사님은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펴며 기지개를 하고 있었다.

출발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버스 앞으로 차가 가득한 것이 보였다. 일찍 가서 쉬고 싶었는데, 포기했다. 이어폰 생각이 났다. 버스 좌석에 떨어져 있었다. 귀에 꽂아 보니 아직도 이정선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잠시 듣다가 껐다. 몇 시인지 궁금했다. 스마트폰에 6시 29분으로 나왔다. 통화소리가 여전했다. 다들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이것저것 불편했다. 좀이 쑤셨다. 그때 번쩍하는 기운이 있었다.


“음. 음....”

잠에서 깼다. 주위를 둘러봤다. 버스 안이었다. 앞 유리에 달려있는 시계에 6시 34분 찍혀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언가 일이 있었는데. 사고.... 분명 사고 났는데, 그럼 사고 현장을 벗어나 달리고 있는 건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뭔가 이상해. 허전한 기분이 들어. 음, 생각해보자. 먼저 퇴근해서 버스를 탔지. 그때가 6시 15분 즈음됐을 거야. 타서 앉고 얼마 안 있어 쿵하고 사고가 났지. 사고 장면을 정확히 봤어. 오토바이 운전자가 날아가는 것도 봤잖아. 우연이었을까?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을 때 마침 사고가 난 건가? 어쨌든 때 맞춰 사고가 났다. 차하고 오토바이가 부딪히고 사람이 날아가고 주변에 추돌사고가 이어지고.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버스 안에 있었는데 주변 소리를 다 들었어. 이건 뭘로 설명할 수 있지.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들었어. 이게 뭐지. 소리. 분명 들었어. 다 들었어. 그리고 또 들었어.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통화하는 소리. 상대방 소리까지 들렸어. 그 사람들이 어떤 통화를 하는지 다 들렸어. 소리를 다 들은 거야. 이정선도 생각나는데 내 스마트폰에 이정선 파일이 없는데 어떻게 이정선 노래를 들은 거지.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보았다. 봐, 이정선 파일이 없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뭐야 이게. 다시 다시 보자. 버스 탄 게 6시 15분, 사고 난 게 늦어도 6시 20분. 그래, 그때 시간을 봤어. 기억나. 시간도 기억나. 6시 29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지금 시간이 6시 35분인데. 6시 20분, 그러니까 사고 난 시간은 버스 타고 얼마 안 돼 서였어. 마지막 확인했을 때 차가 움직이지 않았어. 그게 6시 29분. 정리하면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탔고 어쩌고 저쩌고 다 해서 6시 29분 그 정류장 근처에 있었던 거야. 그런데 지금 시간 6시 37분이고 여기는 제2자유로 끝 지점이야. 그 정류장에서 평상시 막히는 데 없이 20분 달려야 여기에 올 수 있어. 버스가 제대로 온 거야. 버스를 탔고 제대로 제시간에 달려 여기까지 온 거야. 결국 버스에 올라 곯아떨어져 지금 깬 거야. 사고도 소리도 모두 꿈이었던 거야. 이게 뭐야.

“휴.”

고개를 숙였다. 이게 뭐야. 비참해지는군. 꿈과 생시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오른손을 벌려 양쪽 관자놀이에 대고 눌렀다.


“아....”

길고 긴 하루였다. 얼른 집에 가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제 10분만 더 가면 내린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한다. 창밖으로 어깨를 돌렸다.

“앵, 앵.”

사고 현장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경찰이 빨리 와서 정리해야 하는데, 길이 막혀 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버스 안 통화소리가 여전했다. 그만 떠들었으면 하는데 이건 좀 심하다. 버스 앞을 바라보는데 차들이 꼼짝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할지 깜깜했다. 집에 일찍 가는 건 포기해야겠다. 아무래도 한참 걸릴 것 같았다. 버스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버스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었다.

“계는 그의 상징과 같았습니다. 어디를 가도 그는 그것을 왼손에 차고 다녔습니다.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샤워할 때도 벗지 않는다 하자 정색을 하며 어찌 알았냐고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일화였습니다. 1423님이 손편지로 저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곡을 하나 신청해주셨고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이네요.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현재 시간 6시 31분....”

“으. 뭐야.”

집에 거의 다 왔는데. 시간이 왜 31분이야. 고개를 옆으로 빼 시계를 봤는데 6시 32분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잤던 거야? 계속 여기에 있던 거고 자유로 간 게 꿈이었네. 끔뻑끔뻑 했다. 도통 무슨 일이지 모르겠다. 그럼 참인데 거짓이 끼어들었고 다시 참이 됐다 이거지. 이거 술 한번 먹었다고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야? 그럼 언제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하, 하, 하....”

헛웃음이 나왔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고 수습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지쳤다. 지쳤어.

“키키키, 부릉.”

버스가 출발할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집에 가고 싶다. 자세를 바로 잡았다. 좌석 깊숙이 허리를 넣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시다. 어서 갑시다. 고개가 처졌다. 어깨가 좌우로 흔들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얕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이번 달 카드비가 엄청나게 나왔어. 어째, 큰 일 났어. 그러게 말이야.”

옆에 앉은 사람 통화내용이 들렸다. 눈을 감은 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있었다. 차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가방을 잡은 양손에 힘을 주었다. 턱을 가슴에 묻었다. 너무 지쳤다. 이제 쉬고 싶다. 손에서 힘이 풀렸다. 턱이 어깨 쪽으로 밀려갔다. 잠에 빠졌다. 코 고는 소리가 커졌다.

(출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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