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눌프 61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by 초록 라디오

3. 끝 (11)

이렇게 끝납니다.

숨 가쁜 여정이 막을 내립니다.

멋쟁이로 지식인으로 자랑거리로 한때 이름을 날렸던 크눌프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내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겉이 번드르르해 반겼던 것이고 득이 될 것 같아 친구 삼았던 것입니다.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세상 사람 백이면 백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눌프 속마음을 알았더라면 쉽게 다가가지 못했을 터입니다.

다행히 아는 이 몇 없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그의 이름을 대신했습니다.

그는 나그네입니다.

떠돌아다니는 뜨내기 나그네이었습니다.

친구도 동무도 연인도 그를 나그네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제안하지 않습니다.

즐기는 거로 족했습니다.

의문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들만큼 하고 남들만큼 주고 그게 자연스러웠습니다.

크눌프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대접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녔습니다.

그의 마지막 목적지는 고향이었습니다.

고향을 앞두고 숨겨왔던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아니 숨겨 왔다 기 보다는 묻지 않았던 사연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그네가 된 이유, 정처 없이 떠도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묻지 않았습니다.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야 결론을 내린 탓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눌프를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 특출한 사람으로 바라보았지 보통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상해도 속이 쓰려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나그네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으로 대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세운 크눌프의 성벽은 견고했습니다.

창으로 뚫기 힘들었고 칼로 베기 어려웠습니다.

모습을 갖춘 성벽은 난공불락(難攻不落)같이 보였습니다.

단단한 줄만 알았던 성벽에 구멍이 생겨났습니다.

모래알 같던 구멍이 돌멩이가 되고, 돌멩이가 돌덩이로, 돌덩이가 바윗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분열은 내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균형이 깨졌고 마음에 상처가 가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만난 ‘나’는 분열에 불을 붙였습니다.

분열은 두려움으로 크눌프를 괴롭힙니다.

크눌프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치고 결국 고향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나그네가 귀향자가 되어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어머니 품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숨겨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결과를 낳았고, 실연과 상실을 겪고 세상을 믿지 못해 떠나기로 했다는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크눌프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의 눈물이 피어나는 곳이며 고행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고독을 벗 삼는 일 역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고백을 크눌프의 단말마(斷末魔)라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단말마는 죽기 전에 뿜는 고통과 괴로움을 뜻합니다.

크눌프는 그 누이와 인연을 감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털어놓은 적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행, 나그네, 방랑자, 낭인의 낙인이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가슴 아픈 기억, 관계의 실종, 이별의 고통, 외로움의 시작 또한 여기가 출발점입니다.

결과론으로 무책임하지만, 그의 운명이 여기서 결정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영웅 또는 인간의 통과의례로 여기가 근원일 것입니다.

단말마로 크눌프의 인생은 종착점을 맞이합니다.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