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눌프 68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by 초록 라디오

3. 끝 (18)

② 만남- 1

크눌프가 신을 만난 건 우연한 일입니다.

크눌프는 신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길을 떠났던 이유는 인간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신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귀향해 산에 머물다 우연히 신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언질이라도 있었으면 준비해놓는 건데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습니다.

신께서 질문해 뭐라고 답하기는 했지만, 정신이 없어 생각나지 않습니다.

신과 이렇게 우연히 만나도 되는 건지 의아합니다.

크눌프가 고개를 들어봅니다.

앞이 뿌예서 보이는 게 없습니다.

귀로 들리는데 눈으로는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희미해 느낌도 없습니다.

가로막은 벽 뒤로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우연히’ 이곳에 있다가, ‘우연히’ 소리를 듣고, ‘우연히’ 말을 나누고 있습니다.

발길 닫는 대로 ‘우연히’ 여기 있는 것이고, 그냥 있었는데 ‘우연히’ 들렸던 것이며, 말을 걸어와 ‘우연히’ 답을 했던 것입니다.

크눌프의 의지와 관련이 없습니다.

크눌프에게 이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입니다.

우연히, 우연히. 신께서 하는 말씀을 듣던 크눌프가 생각에 잠깁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투 같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익숙한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말투며 하는 말이며 기억이 날 듯 떠오르지 않아 답답합니다.

한 발 다가섭니다.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습니다.

한 발 더 옮깁니다.

바스락, 바스락, 저벅, 저벅.

크눌프가 다가서자 소리가 멀어집니다.

두 발 옮기자 저만치 갑니다.

좁힐수록 멀어지고 시야가 흐려집니다.

손을 저어도 여전히 잡히는 것 없습니다.

눈이 소용없고 손발이 쓸데없습니다.

귀만이 제 역할을 합니다.

어느덧 소리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귀는 알 수 있습니다.

귀는 눈 마냥 존재를 인식합니다.

소리가 그의 이름표입니다.

소리로 신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소리는 인간과 신의 연결고리입니다.

소리는 크눌프의 유일한 도구이자 의지의 표현입니다.

마지막 도구로 신과 외줄 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낭떠러지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뒤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배수진(背水陣)입니다.

아쉬움을 남길 이유 없습니다.

처음처럼 깨끗하게 게워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