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3. 끝 (30)
⑥ 죽음- 2
그의 죽음을 아는 사람 없습니다.
그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관심 두는 사람 없습니다.
산에 들어서면서 그는 잊힌 사람이 됩니다.
기억에서 추억에서 기록에서 크눌프는 이제 없는 사람입니다.
산짐승들은 기억할지 모릅니다.
해와 달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로운 장례식이었습니다.
태어나 지켜보는 이 없이 죽는다는 건 생각만으로 외롭기 짝이 없습니다.
육신 산짐승에 양보하고 영혼이 그 모습을 지켜봅니다.
죽는 게 숙명이라 하지만 이렇게 외로운 장례는 피하고 싶습니다.
외로운 장례식은 쓸쓸하고 슬프고 적막할 것 같아서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크눌프의 숙명이 안쓰럽게 다가옵니다.
누구도 찾지 않을 크눌프의 무덤, 산짐승만 알고 있습니다.
향냄새도 못 맡고 울음소리도 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가 춥지 말라고 이불이 되어 줍니다.
감사 인사 못 한 채 눈을 감습니다.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떠돌이의 기나긴 여정이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죽기 전 신과 함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신은 부모의 다른 모습이고 시작이며 끝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즉 환생의 첫 단계가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논리라면 크눌프는 이제 출발선에 선 셈입니다.
고된 과거가 지워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됩니다.
그래도 외로운 장례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품일지라도 오한을 막지 못했고 적막을 깨는 자 하나 받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울어주어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