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3. 끝 (33)
⑦ 장송곡- 2
‘슬픈 왈츠’에서 엄마의 죽음은 소설 [크눌프] 속 크눌프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슬픈 왈츠’에서 꼬마는 소설 [크눌프]의 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꼬마는 극의 시작을 알리며 엄마의 아들로 슬픔을 품은 상주 역할을 합니다.
꼬마는 드러나지 않지만, 작가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 모두 꼬마의 각본이었고 연출이었습니다.
꼬마는 엄마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엄마의 죽음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죽을 운명이었고 꼬마는 알고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슬픈 왈츠’의 음악 왈츠는 소설 [크눌프]에서 소리에 해당합니다.
신과 인간은 소리로 반응하곤 합니다.
왈츠는 병든 엄마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엄마는 도로 병자가 됩니다.
죽음이 문 앞에 다가섭니다.
신이 소리로, 음악으로, 왈츠로 병자에게 가자고 손짓합니다.
병자가 단말마로 화답하고 뒤를 따릅니다.
소리는 신과 인간을 잇는 고리 구실을 합니다.
운명의 실타래를 쥔 신의 소리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꼬마가 작곡한 왈츠는 엄마를 일으켜 세웠지만 듣기에 슬픈 노래이었습니다.
슬픈 노래는 슬픈 운명을 암시합니다.
엄마가 춤을 멈추고 죽음이 곁에 다가섭니다.
이렇게 ‘슬픈 왈츠’는 장송곡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상엿소리가 구슬픈 까닭은 넋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슬픈 왈츠’가 구슬픈 까닭은 죽음이 춤을 추기 때문입니다.
춤추는 죽음(죽음의 춤, Dance Of Death)은 죽음의 공포를 떨쳐내기 위한 풍자, 해학, 부적, 상징을 말합니다.
얼굴이 웃고 있어 공포를 이겨낸 듯하지만 실제는 해골바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춤추는 몸 모두 살점 하나 없이 뼈만 남아있습니다.
춤추는 죽음은 운명의 이름으로 죽음에 가면 하나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픈 왈츠’에서 춤추는 죽음은 단도직입적으로 죽음과 다를 게 없습니다.
죽음은 선천적으로 헤어짐과 구슬픔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춤추는 죽음이 구슬펐던 까닭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엿소리를 듣고 과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쉽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