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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16. 2021

생일 선물에 관한 논쟁

선배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배는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으로, 결정은 훨씬 전의 일이지만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후 잠시 정체기를 겪었다.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내년 9월 즈음에 가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최근 선배로부터 들었다. 나는 프랑스 가기 전 한국에서 보내는 선배의 마지막 생일을 기념하고 싶었다. 한참 동안은 한국에서 선배를 못 볼 테니까.


'유학 가는 친구 선물 10선'을 검색해보았다. 별로 와닿는 게 없어서 실망했다. 나 스스로 생각해보자면, 그저 한국의 추억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국적인 선물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어떤 선물이든 비행기에 가지고 가면 짐만 될 뿐이었다. 더욱이 간소한 삶을 지향하는 선배로 추론컨대, 불필요한 것까지 마구 챙겨서 프랑스에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 놔둔 채 쓰이지 않을 선물을 주고 싶진 않았다.


때마침 떠오른 것은 집 앞 가게에서 본 레터링 케이크였다. 누구나 생일 때 흔한 공장식 케이크는 많이 받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이름이 들어간 케이크를 받아본 사람은 드물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쯤은 온전히 자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케이크를 받아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겠지. 또 케이크는 기념과 축하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새 출발을 하는 선배의 상황과 어울리는 선물이다. 더욱이 먹고 사라지는 음식은 짐 될 염려도 없다. 그렇게 선물은 레터링 케이크로 결정되었다.


주문제작이다 보니 케이크 위에 쓸 문구를 생각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학을 가는 상황과 선배에 대한 나의 애정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절묘한 표현이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만족할 만한 문구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케이크 주문을 끝마쳤다.


Happy new day to Newday*.


(*뉴데이: 선배의 필명)



*

*

*


한 달 전쯤에 선배와 우연히 선물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선배와 나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서로의 생일을 챙기던 사이였는데, 그렇다 보니 생일이 다가오면 이번엔 뭘 선물해야 할지 살짝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이렇게 매년 꼬박꼬박 생일을 챙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친구와는 보통 정해놓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해는 선물을 주고받다가도, 또 어떤 해는 서로 인사만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그게 좋다고 생각했다. 항상 챙겨야 하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 되면 의무처럼 굳어지고, 결국 숙제가 되어버린다. 또 선물을 주는 마음은 때에 따라 다르다. 한가할 때에는 선물 챙기는 게 즐겁지만, 바쁠 때에는 일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매년마다 선물을 주는 게 굳어지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제사처럼 처음의 좋은 취지는 옅어지고, 갈수록 고통의 원인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선배와 안 지 꽤 되었고, 서로의 관계도 충분히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올해 생일은 인사만 하고 선물 없이 슬그머니 넘어가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선배에게 마침 먼저 연락이 왔다.


"우리 생일 선물에  관해서 말인데... 매년 선물을 고심하는 것도 일이고 또 주고 나서도 마음이 쓰이더라고..."

나는 선배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았다. 선배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럼 이제부터 간소화하자는 얘기겠다. 선배와 마음이 통한 게 좋았다. 그런데 뒷 내용은 나의 예측을 불허했으니...

"앞으로 서로에게 자기가 받고 싶은 리스트를 만들어서 주는 게 어때? 서로 선물 고민하는 일을 줄이는 거지!'




예...??!!!?



그렇게 선물 논쟁(ㅋㅋ...)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원하는 것을 미리 말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면  물건을 고르는 불편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매년 꼬박꼬박 선물을 해야 한다는 의무 자체를 없애는 일이었다. 의무 때문에 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흔쾌한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어야만 가치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럼 선물을 하는 것과 구매 대행의 차이는 뭘까요?"

내 말을 듣고 선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맞아.. 선물이란 게 상대가 고르는 과정에서 진심을 전달하는 측면도 있단 말이지..."

나는 평소 친구들과 내가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럼 매년 선물하기보단 챙기는 해도 있고, 그냥 넘어가는 해도 있는 식으로 하는 건 어때요? 고심해서 골라주되, 매번 그렇게 하면 힘드니까 바쁠 때는 가끔씩 걸러가는 거죠. 안식년처럼ㅋㅋ"

"그건 음... 내 기준에선 너무 정 없다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결론이 나지 않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생일에 선물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나의 입장과 그래도 생일만큼은 챙겨야 한다는 선배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꼭 생일이 아니어도 하고 싶은 날 자유롭게 챙겨주면 어때요? 생일 때 주는 선물은 인위적으로 챙겨준 느낌이라면, 생일이 아닌 날에 주는 건 평범한 날들 속에서도 상대를 생각했다는 거니까 더 특별하지 않아요?"

"나는 오히려 생일 아닌 날에 받은 선물은 갑자기 왜 이걸 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던데. 그리고 이왕 줄 거면 하고 많은 날 중에 좀 더 특별한 생일 때 주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늘 느끼는 거지만 사람은 이렇게나 다르다. 나는 답도 없이 통화가 계속 길어지자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에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선배,, 그냥 나는 선배가 좋은 방식이면 돼요.. 그냥.. 처음에 선배가 말했던, 리스트 만들고 서로 주는 걸로 해요..."

"아냐.. 그건 이제 원하는 게 아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반성했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일인가.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그냥 '네 알았어요' 하고 넘어갈 걸... 뜨거워진 휴대폰을 들고 있자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일이 꼭 이번만 그랬던 게 아니라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 이건 데자뷰야...




선배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

*

*


선배와 만난 것은 대학교에서였다. 내가 졸업반이었을 무렵, 같은 과였던 선배는 당시 휴학 후 복학을 했다. 그래서 두 살 어린 나와 같이 취업의 반열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때마침 선배와 면접 스터디를 같이 준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공부 이외에도 여러 사담이 오가며 친해졌다. 선배는 주관이나 취향이 뚜렷했고, 동시에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선배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알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추구하는 바가 뚜렷했다. 선배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영화 취향과 잡다한 얘기들을 나에게 줄줄 말했다. 그걸 옆에서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선배는 저걸 좋아하는구나. 그럼 나는 어떤 걸 좋아하지?" 나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주관이 흐리고 모호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배를 만날 때 늘 호기심이 일었다. 선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꼭 나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나는 선배와 만나는 시간이 굉장히 좋았고, 그래서 선배를 유달리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배의 불편한 점이라면 이상주의적인 측면이었다. 선배는 그냥 이쯤에서,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선배의 기준치는 높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자세는 가히 우러러볼 만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문제시되는 건 뭐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으려고 했다. 나는 그런 소통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선물에 대한 논쟁이 길어질 때, 나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래요.. 선배.. 나는 그냥 선배가 좋다는 방식으로 할게요..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요." 내가 적당히 어물쩍 해결하려고 하면 선배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와 의견이 갈릴 때, 나는 주로 내 뜻을 꺾었다. 상대가 원하는대로 하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긍하고 상황이 종료된다. 자기 뜻대로 해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무의미한 논쟁을 빨리 끝내고 싶을 때는 그 방법이 최고였다. 그런데 선배에게는 이상하게도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선배가 바라는 이상은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내는 것. 그래서 늘 선배와의 대화는 길어지고, 어렵고 힘들다.


내가 살아온 방식은 지극히 회피적이었다. 상대와 의견이 충돌할 때, 지난한 조율의 과정이 싫어서 차선으로 내가 맞춰주는 방식을 택했다. 나는 상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안 맞는 부분이 많이 생기면 더 이상 내가 맞춰줄 수 없는 상대라는 판단이 들어 관계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식이었다. 나는 입씨름이 싫었다. 그러니 작은 것에도 이의를 곧잘 제기하고 대화를 하려는 선배의 태도가 적응이 안 됐다. 빠른 해결 방법을 두고도 굳이 일을 벌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배와 함께 지내며,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방식의 장점을 점차 알게 되었다. 소통을 중시하는 선배의 태도는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엘리트주의에 가까운 사람이다. 사안에 대해 좀 더 잘 아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정한 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엘리트주의가 아무리 정의롭게 대중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게끔 실현된다고 한들, 그 과정에서 대중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아둔해진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왕의 말이 곧 법이었던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선정을 펼치면서도 꼭 백성에게 물어 의견을 구한 점, 그리고 그 과정을 결코 귀찮아하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걸 시사한다.




선배는 항상 진심이다. 사람 한 명 한 명을 대할 때에도 진심이기 때문에 기대가 높다. 선배는 학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말하자면 개인 과외를 하고 있다. 자신의 제자에 대한 열정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일에서도 늘 진심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원래 하던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꿈을 향해 뛰어들었다. 선배는 관계에서든 일에서든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


가장 베스트를 따지자면 늘 매년 정성껏 선물을 챙기는 것이 맞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살다 보면 바쁠 때도 있지'라고 귀찮음을 합리화하며 요령을 피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당히' 살아온 인생으로서는 늘 '적당한' 결과만 얻었다. 나의 태도 때문에 놓치는 인연도 많았고, 피상적인 관계에만 머무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

*

*

"그런데... 매년 생일 선물을 꼬박꼬박 줄 필요가 있나요...?"

살다 보면 서로  각자의 일로 바쁘기도 할 테니까. 나나 선배나 둘 다 한가하게 있을 사람은 아니다. 그런 점이 잘 맞았다. 그리고 따지자면 바쁘기로서는 유학길에 오른 선배가 훨씬 더 바쁠 것이다. 나의 물음에 선배는 답했다.





"그래도 나는 00(내 본명)이의 생일을 매년마다 챙겨주고 싶어!"


어쩐지 나는 그 말이 그날의 대화를 모두 설명하는 것만 같았다.












이상에 대한 선배의 광기ㅋㅋ에 가끔 정신이 혼미하다. 선배는 선배대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의 광기ㅋㅋㅋ로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문득 선배가 이상을 내려놓게 되는 날이 오면 그게 또 서운해질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래.. 00아.. 우리 그냥 이쯤에서 이렇게 결정하고 끝내자...'

'좋은 게 좋은 거지~' '00이 너 편한 대로 해~'

그런 말을 선배로부터 듣게 되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왠지 슬퍼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런 지지부진하게 길어진 대화들도 무척 값진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긴 대화를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이 가치 없는 논쟁이기 때문이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하려는 논쟁. 논쟁의 끝은 대체로 힘의 논리를 따른다. 결국 힘의 차이밖에 확인하지 않고 끝나는 대화이다. 정확히는 대화를 빙자한 토론. 아니, 토론도 아니다. 그저 힘 있는 자가 공정한 척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을 때 사용하는 허울 좋은 방식인 것이다. 나는 그런 힘 있는 자의 훈계를 수없이 마주했고, 그래서 긴 대화를 피곤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선배의 대화는 다르다.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말꼬리를 잡고 이기려는 게 아니라, 정말 서로가 원하는 방식인가를 살피기 위한 진정성이 있다. 그래서 값지다.



어쨌든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고, 었던 선물 논쟁의 끝을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어떤 형식과 의무에 얽매이지 말자. 하지만 이왕이면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해주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받았을 때 가장 좋았던 선물에 대해 얘기하고 통화를 마치기로 했다.

"저는 선배가 일본 여행 갔다 와서 준 선물이 기억에 남아요.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선배랑 아는 사이 정도의 관계였지만ㅋㅋ, 그 선물을 받고 나서 친한 사이라는 의식이 생겼어요. 저한테는."

"나는 물질적으로 받았던 것들이 지금 크게 떠오르진 않고ㅋㅋ 오히려 나는 네 작품에서 간간히 내가 언급될 때가 제일 기뻐."

이것 또한 참 의외의 대답이었다. 선배는 늘 나의 예상을 깨뜨린다.



앞으로 '선배를 내 창작에 종종 등장시켜야겠다' 그리고 '선배는 생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간소하게라도 잊지 말고 선물을 챙겨야겠다' 이 두 가지 다짐을 남기고, 그렇게 선물 논쟁은 훈훈하게 막을 내렸다.



비록 대화 전과 후의 양상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아마 나와 선배는 이전처럼 매년 서로를 위해 선물을 고심하리라.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전보다 선물에 관한 고민이 줄었다. 그때의 대화를 통해 어떤 방식이든, 어떤 선물을 주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거라는 진심을 확인하였고, 그로부터 우러나온 안정감이 오늘 이 케이크를 편안하고 순수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리라.


레터링 케이크의 이야기가 참 길고 길었다.


끝으로,

케이크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도 선배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는 선물이 되기를 바라며.

2021.10.15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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