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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Jul 15. 2019

'잘한다'의 기준은 뭘까

잘한다고 하기엔 미심쩍을 때

  자신의 실력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확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들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대답하기 상대적으로 쉽다. 직관적으로 나에게 유쾌함을 주는 활동을 나열하면 된다. 하지만 잘하는 것을 말하려면 한없이 겸손해지는, 자기 검열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잘하는 거고, 어디까지가 평범한 수준이란 말인가?




   우선, '잘하는 것'의 의미부터 명확히 해보.


  잘함의 기준은 무수히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다. 혹자는 돈을 벌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수익성 내지는 상업성이라 하겠다. 어떤 것에 수요가 있고 입을 창출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이 봤을 때 실력을 인정받는 정도가 되면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일반적인 객관성을 확보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잘함의 기준을 설명하자면, 편안한 상태로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생각해본다.


 즉, 편안함과 지속성.


  활동 자체가 편하긴커녕 스트레스가 되어 쥐어짜내는 기분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설령 많은 공을 들여 그 결과물이 훌륭하더라도, 활동을 지속하기가 힘들다. 일회적인 활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으며 그에게 다음 활동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편안함은 지속성과 서로 관련이 있다.


  어떤 활동을 하며 편안하게, 쉬이 결과물을 낸다는 것은 일정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실력이 없으면 편안한 상태로 결과물을 낼 수도 없다. 짜내듯이 힘을 주어야 겨우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을까?


  만약 편안하게,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하는 것이다. 단순히 결과물의 훌륭함만 놓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기보다는 활동 과정에서의 상태와 지속적 생산 능력을 따져보는 것도 유의미한 관점이 아닐까.


  다음으로, 잘하는 것을 어떤 분야의 좁은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도 내 능력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가령 '나는 글을 잘 쓴다'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부담감이 든다. 하지만 '사실적인 정보를 담은 짧은 호흡의 글을 잘 쓴다', 혹은 '가상의 사건을 다룬 중편 소설을 잘 쓴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파악하여 감상평을 잘 쓴다' 등 범위를 좁게 한정하면 부담감이 적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더 쉬워진다. 모든 종류의 글을 다 잘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잘게 분야를 나누어보면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림 칭찬을 들어도, 스스로의 실력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간략한 흑백의 캐릭터를 다양한 표정으로 즐겁게 그리며 지속적으로 결과물을 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부분은 내가 잘한다고 확답을 할 수 있다.




  만약에 내가 무언가를 잘하는지 고민이 든다면, 어떤 활동을 하여 편안한 심리 상태로 결과물을 지속하여 만들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러하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하는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나의 능력을 설명해보자. 아주 작은 부분에서는 잘하는 점을 얼마든 찾을 수 있다. 사실적인 그림은 못 그리더라도 '다양한 색채를 조합패턴 일러스트를 잘 그리고 즐겨한다'고는 말할 수 있듯이.



  잘한다는 것에 많은 의구심을 품지 않아도 된다. 그저 편안하게 잘 하고 있다면, 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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