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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Jul 22. 2019

디지털 디톡스의 추억

그리고 재도전

  나는 현대 사회의 충실한 콘텐츠 소비자로서 수많은 구독물을 매일 소비하고 있다. 지루함의 공백을 메기 위해 끊임 없이 영상을 틀어놓는다.       

  


  '카톡' 소리가 들렸다. 바로 확인한다. 단체 카톡방이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카톡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에 약간 피로감을 느낀다. 혹시나 중요한 얘기를 놓친 건 아닌가 싶어 안 읽기는 찝찝한데, 읽고 있자니 별 중요한 내용도 없다. 나에게 필요치 않는 정보를 읽어야 하는 의무감이 피곤하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독립을 하고부터다. 가족들과 살 땐 그렇게 폰을 많이 보진 않았다. 친구든 가족이든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다소간 폰을 덜 본다.



  근데 혼자 사니까 폰을 보는 시간이 대폭 늘었다. 내 생활을 되돌아보니 퇴근 후부터 자기 전까지 폰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좀 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요물, 스마트폰.

  나에게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일까?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을 느꼈다.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하는 처방.
-출처 《트렌드 지식사전》






  예전에 의도치 않게 디지털 디톡스를 해본 적이 있다. 대학생 때였는데, 갑자기 폰이 고장났다. 근데 왠 걸, 폰 없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은 PC버전으로 확인하 과제도 성실히 임했다. 딱히 학교-집 밖에 가지 않아서 나의 소재는 쉽게 파악 가능했다. 대학교의 수업 루틴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불편함이라곤 시간표를 메모해놔야 하는 것뿐이었다. 다음 강의는 어디 몇 호실인지 다 외우긴 힘들고 귀찮았기에. 그걸 종이에 써서 늘 가지고 다닌 것만 손이 갔지, 불편할 것도 크게 없었다.

  이쯤 되니 휴대폰의 유용성에 의구심이 들었다.

  '꼭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져야 할까?'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안 가진 사람이 단 1명도 없었다. 100%에 수렴하는 놀라운 획일성에 의문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잘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삶을 좀먹는 타입도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이 꼭 모두에게 필요한 걸까?

  나는 스마트폰이 내 삶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없어도 충분히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내 삶에 허비하는 것이 없이 본질만 남은 기분이었다. 물건을 버리는 미니멀라이프처럼 내 삶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정리한 기분. 유혹거리가 없으니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내 삶에 필요 없다고 결론지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다.
  "나 폰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처분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너랑 연락 안 되면 남들이 얼마나 답답하겠어."

  '내가 폰이 없는 게 민폐가 되는 건가?'

  나는 내 자유의지가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이건 마치 사회적 강요이자 다수에 의한 횡포랄까. 매달 적지 않은 요금을 지불하면서도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오히려 방해되는 이 기기를 내 의지로 안 하겠다는데. 그래서 좀 오기가 생겨서 더 수리를 미뤘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잘 지냈는데 문제는 주변에서 불안해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딱히 피해준 일도 없었지만 남들에게 잠재적 불안감(?)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성화에 못 이겨 고치러 갔다. 또 대학이라는 특성상 공동의 협력 활동이 많으니, 타인과의 조화가 우선순위라 일단 획일화의 굴레에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문명의 이기가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제약하기도 한다. 내가 원해서 문명의 이기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어 삶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지. 실제로 나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였는지는 따져볼 만한 일이다.


  대학 시절에는 환경적 요인에 굴복해 포기했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은 전보다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 좋은 환경에 놓였다. 업무 시에는 별도의 메신저를 쓰기 때문에 폰을 볼 필요가 크게 없다. 업무 시간 이후의 연락은 비매너로 여기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일은 업무 시간에만 잘 확인하면 실책이 되지 않는다.

 또 나는 인간관계도 정리를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닌데, 성향에 따라 살다보니 정리가 되었다.


  나에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들만 남았는데, 이들과는 통화를 선호해서 전화로 주기적인 연락을 한다. 날잡아 1-2시간 통화하는 스타일. 그래서 카톡은 잘 안 하지만, 서로 신뢰가 잘 정착되었고 관계 유지에 무리가 없다.


   디지털 디톡스를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 싶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폰을 없애긴 지금으로선 힘들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다.
  적어도 여가 시간에는 폰을 서랍장에 넣어두려고 한다. 소리 정도는 켜두면 전화나 카톡 확인은 할 수 있으니까. 목적 없이 폰을 만지는 시간을 줄여보고자 생각해낸 방법이다.



  나중에는 정말 폰도 없애고 정말 순수하게 자연인처럼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내 삶이 지금보다 불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머릿속은 좀더 맑아질 것 같아.


  은퇴하면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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