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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07. 2019

삶의 디폴트를 깨어보는 것

아프기 시작했다.
복통 때문에 섭취한 약의 어느 성분이 나와 맞지 않아 몸에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한동안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각하게 아프진 않지만, 대체로 골골거리며 지냈다. 딱 그 정도의 파리함.

머리를 말릴 때도 멋 내지 않았고, 삐죽 못나게 말려져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옷도 고심해서 고르지 않고, 최대한 편한 옷을 선택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다지 꾸미는 편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육신보다 건강한 육신이 우선이라는 소중한 신념을 종종 망각하곤 했다. 아름다워도 신체의 편안함을 거스르는 옷은 입지 않는 것, 몸을 존중하는 방식의 옷 입기를 행하게 되었다.





직업 세계에서는 친절함이 디폴트인 생활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웃음기 없는, 건조한 하루를 보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냈다. 친절하지 않아도, 상냥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이렇게 살아도 삶은 굴러가는구나. 평소의 친절함이 무색할 만큼 삶은 잘 흘러갔다.





아프니까 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불과 하루 만에.

때론 이런 경험이 오히려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이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하듯, 아픔은 내게 생활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나의 생활에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이 남게 되었다.



때론 아프지 않아도, 내 삶의 디폴트를 깨어보는 시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내가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을 하지 않아 보는 시도. 그럼으로써 그것이 진정 필요했던가를 성찰하는 경험. 내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에 더욱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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