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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14. 2019

오랜 시간이 향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 모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연휴에 동문인 친구와 대학교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서다.


예전에 자주 머물렀던 장소를 방문하게 될 때, 그 시절 느꼈던 감성과 추억을 회고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즐거운 추억이 많았던 곳이면 그때의 향수가 느껴져 좋고, 싫은 기억이 있었던 공간조차도 그때를 벗어나 현재에 다다른 것에 안도하게 되어 좋다.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서둘렀다. 홀로 교정을 거닐다 보면 즐거울 것 같아 기대감을 느꼈다.





학교에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하지만 웬걸, 민망하리만치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음에 놀랐다.

그 시절이 그립지도, 차라리 그때가 싫었다는 회고마저도 들지 않았다.

그곳은 나에게 무색무취의 공간이었다.



왜 그런 걸까.



대학 시절 나는 많이 겉돌았다. 이미 전공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채 입학을 했고,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스스로도 그들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과 생활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대학교 시절은 나에게 그저 감내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때의 내 하루는, 대학교 수업이 마치고 교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즐거움을 학교 밖에서 찾았고, 학교란 공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적었다.




혼자 허탈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반갑게도 친구가 도착했고 근처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길에, 오늘 느꼈던 황망함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랬더니 친구도 무척 공감을 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임에도 설렘이나 모종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도 대학 생활에 나와 닮은 면을 조금은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어쩌면 그런 접점이 있었기에, 허전했던 그와 외톨이였던 내가 대학에서 서로에게 이끌려 친구가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 우리의 시간은 멈춰있었던 거야.


친구가 말했다. 나는 참으로 적확한 표현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떤 공간에서 보낸 절대적 시간이 그곳에서의 향수를 담보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 머물렀더라도 아무런 의미도 붙잡지 못했다면, 그곳에서 시간이 흘렀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 지워진 시간과 공간은 애달프고 허무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거처하는 장소도 훗날 방문하게 될 때 오늘과 같은 황망함을 느끼진 않을까. 머문 자리가 전부 의미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길 바란다. 적어도 내가 머문 공간이, 훗날에도 살아 숨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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