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 Nov 10. 2019

무기력, 그리고 이직을 내려놓음

한동안 이직을 위한 마음에 부풀어있었다. 2년 일하고 1년 쉬는 사이클을 살면서, 쉬는 기간에 창작자로서의 입지를 조금씩 넓히다 보면 이직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요새 더 무기력하고 정신건강이 나빠졌음을 확연히 느낀다. 무기력이 심해져서 냉장고에 식재료가 있는데도 요리가 귀찮아 밥을 안 먹고 과자로만 끼니를 해결했다. 부패해가는 쓰레기봉투를 보면서도 치우기 귀찮아서 외면했다. 방 꼴은 엉망이 되었다. 직장만 근근이 다닌다 뿐이지, 내 사생활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이직 혹은 이직 준비라고 해도,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지금 내 정신 상태가 썩 좋지 못함을 느꼈다. 가뜩이나 무기력한데 이직 준비랍시고 일을 그만두거나 줄여서 여가 시간이 늘어난들 가치 있게 보낼 것 같지가 않았다. 이직을 준비하려면 앞으로 뭘 하고 싶다 하는 열정이나 꿈, 방향성이 적어도 있어야 할 텐데, 무엇을 떠올려도 설레지가 않았다.

  일단은 이 고질적인 무기력이 좀 해결된 뒤에 온전한 판단력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무기력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좋지. 생각 끝에 동네에 지나가며 보았던 심리상담센터를 충동적으로 방문했다. 하지만 가보니 영업을 아예 접은 것처럼 보였다. 건물이 오래되기도 했고, 검색해도 뜨질 않는 걸 보니 영업을 안 하는 듯했다. 실패.







오후에 알고 지내는 분과 통화를 했다. 이직에 대한 고민과 최근의 무기력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어떤 일이든 막상 하면 힘들 것이며, 지금으로서는 좀 힘을 빼면서 출퇴근을 하는 것은 어떠냐고 했다. 지금 상태로서는 무기력한데 직장까지 그만두고 야생의 상태에 내던져지면 더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 나는 그런 말들이 지금으로서는 더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힘을 내고, 꿈을 향해 도전하라는 말보다. 힘 좀 빼자고, 적당히 살아도 괜찮다고.




마음이 이직을 내려놓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하고 싶은 것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낮은 퀄리티로라도 내 일상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웹툰을 다시 그리고 싶어졌고, 이때까지 구상에 그쳤던 새로운 만화도 그려보고 싶어졌다. 귀찮아서 미뤘던 블로그 여행기도 다시 쓰자 싶었다. 이직을 하려면 성과를 내야 한다, 수익을 창출할 잠재력이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지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새록새록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직을 꿈꾸면서 내가 얻는 이득은 현실 도피이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 꿈은 많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직을 꿈꾸며 받는 희망 고문, 그리고 불안함. 그런 것들을 아직 내가 감당해내기엔 그릇이 작다는 생각이 든다.

이직을 내려놓음으로써 내가 얻는 이득은 자발성이다. 여태까진 직장을 다니는 것이 나의 자유를 저해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히려 생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돈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발적 창작을 위한 환경 조성으로 작용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이 양질의 작품 창작에 더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정신 건강에도.



이직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긴 컸나 보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던 그간의 무기력이, 이직의 생각을 조금 내려놓자 무거웠던 몸도 다시 일으켜지기 시작했다. 아직 내 방은 더럽지만, 그래도 오늘은 빨래를 했다. 그리고 대충이나마 밥도 챙겨 먹었다.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2년 일하고 1년 쉬는 노동의 사이클은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