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를 좋아했습니다. 무리를 싫어하고 혼자서 싸우는 고독한 늑대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가능한 한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또 사실, 웬만한 일은 혼자 할 때 더 좋은 성과가 나오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꿈은 등대지기. 털이 북실한 개 한 마리와 함께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살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죠. 하지만, 이국땅에 떨어져 처음부터 인생을 리셋하게 되면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변 분들에게 엄청난 신세를 지면서 버텨오게 되더군요. 어쩌면 사람이란, 원래부터 이렇게 혼자 잘난체하며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으면서 살게끔 프로그램 되어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민 5주년 때와 10주년 때는 카드와 편지를 만들어 생존신고도 할 겸 그간 신세 진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었는데, 20주년이 되면서 이번에는 우리 가족 이민 기록을 책으로 엮어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들 덕분에, 이렇게 잘 적응해 왔고, 다행히 아직 사람구실하면서 산다… 고 말이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우리 이민 생활을 보고하는 차원으로, 그래도 끼니는 챙기고 산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운영하던 블로그가 있기는 했지만, 워낙에 히키고모리처럼 은둔해 있는 블로그였기에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글을 꾸준히 쓰는 동안 종종 피드백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광고창이 최소한 된 곳에서 글을 연재하자 생각했었죠. 그래서 카카오에서 서비스하는 <브런치> 쪽으로 눈을 돌려 보았습니다. POD나 공모전 등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도 좋았고 공개적인 환경이다 보니까 내가 올린 글에 대한 반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겠다 싶기도 했구요. 그리고 이런 글쓰기 플랫폼을 빌려서 쓰다 보면 좀 구속력이 생길 것만 같아서, 그것도 좋았어요. 개인 블로그랑 다르게 아무래도 공개된 대기업 서버 공간을 빌려 쓰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왠지 기왕 빌렸으니 그 하드 드라이브 공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다행히 뜨문뜨문이지만 블로그에 남겨둔 기록과 구글 사진첩, 구글맵의 이동 기록들이 있다 보니까 이민기와 캠핑여행기를 생각보다 순조롭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브런치북이 30 챕터까지 밖에 허용을 안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중에 또 한 번 대박 재편집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일단 브런치북을 만들고 나니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죠. 공모전에 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기에 공모전 일정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POD로 진행했습니다. 이 책들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그냥 선물용으로 몇 권만 찍을 생각이었고 대량생산은 종이 낭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럴 수준의 책도 아니거니와, 이곳에 있는 정보들 역시 그냥 저의 한정적인 경험에 국한된 정보거든요. 밴쿠버 이민 초기에 정착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긴 했어도, 그게 의도한 대로 될 거라는 보장도 없구요. 만에 하나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정보 같은 건 무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트위터 뉴스나 구글 검색처럼요. 때문에 이 책과 밴쿠버 캠핑 여행기 <그래도 캠핑>에 나온 내용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제 브런치 사이트에 계속 게재되고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PDF 이북 역시 항상 최신버전으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하도록 해둘 예정입니다.
최근에 부쩍 제 <이민기>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단, 섣부른 추측이나 조언은 안 하려고 합니다. 본문에서도 썼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저 마다 다른 이유로 이민과 역이민을 선택한다는 걸 꾸준히 봐왔거든요. 그렇더라도, 막연한 동경이나 혐오를 넘어서 자기 삶의 스타일에 더 잘 어울리는 나라를 꼼꼼하게 선택해서 여생을 보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2023 정월 밴쿠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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