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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ug 10. 2023

캠핑 준비의 A to Z

그래도 캠핑 II 외전 3

최근 들은 주변 지인 커플의 에피소드 한 꼭지.


아내가 정말 너무나 운이 좋게도 ‘포트코브’ 캠핑장 예약에 성공해서 장비를 이곳저곳에서 빌려 인생 첫 캠핑을 갔다고 한다. 해변을 따라 놓인 사이트에 앉아서 “아… 우리 집에서 이렇게 한 시간도 안 되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역시 밴쿠버는 …” 하면서 같이 감동에 빠지기도 하고, 야외에서 같이 음식도 해 먹고, 어둡고 쌀쌀해지면서 모닥불도 피우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남편은 서둘러 텐트를 걷는 게 아닌가? 아내가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자고 가자고 권유했건만, 남편의 논리를 꺾을 수는 없었다. “아니, 여기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우리 집이 있는데, 왜 찬 바닥에서 자?”


취미 생활이라는 게 말 그대로 사람마다 각기 다른 취향을 따르는 거라서, 내가 좋아하는 걸 남편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특히 캠핑은 비싼 장비 값은 차치하고라도, 제법 복잡하고 지난한 준비과정과 육체노동, 그리고 딱딱한 바닥과 추위와 싸우며 잠을 자야 하는 고난이 포함되어 있기에 누군가를 억지로 하게 했다가는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수 있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저 이야기에서 아내의 서운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이, 아무리 빌린 장비로 시작한 첫 캠핑이라고 할지라도 그 캠핑을 준비하기 위해 혼자서 많은 수고를 해야 했을 텐데, 다음 날 새벽 어스름이 걷히는 동안 새소리를 들으며 따듯한 커피와 함께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는 경험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모르는 사람은, 캠핑 준비가 뭐 그냥 음식 준비하고, 짐 싸고 그런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첫 캠핑은 여전히 실수투성이이고, 힘들고, 춥고, 등 배기고 그렇겠지만, 캠핑 짬이 늘어날수록 점점 장비도 많아지고 준비할 거리도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캠핑이라는 경험 자체가 편하기보다는 많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많은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장비로 그걸 보완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부족해도, 캠핑이 주는 심리적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에 현질을 끊임 없이 해서라도 캠핑 자체를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서 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는 캠핑의 일반적인 준비를 기록해 보자면,


일단 연초에 주립공원, 국립공원 캠핑 예약을 잡는다. 보통 국립공원은 1월 중하순에 1년 치 예약을 모두 접수하고 주립공원은 캠핑장 도착날 기준 4개월 전에 예약을 할 수 있는데, 지난 몇 년 간은 팬데믹 기간도 있고 했어서 예약일정과 규정이 해마다 바뀌어왔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대부분 주립공원 캠핑장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5월 빅토리아 데이 연휴 이전에는 개장을 하지 않고, 개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약을 안 받는 경우가 많아서 1월 중순이 되어야 예약 접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트코브’처럼 전기가 들어오거나 비교적 따뜻해서 인기가 좋은 캠핑장은 연중무휴로 개장을 하고 예약을 받는데, 10월 추수감사절 연휴 이후에는 샤워실과 급수시설을 잠가둔다. 물론 사용료도 그에 따라서 낮아지는 편.


여하튼 연초에 휴가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캠핑장 예약 사이트가 열리면 무조건 예약을 한다. 특히 토피노나 벤프 및 자스퍼와 같은 유명 국립공원 캠핑장의 경우, 캠프 사이트 예약은 정말이지 천운에 달린 일이라 일단 예약에 성공하면 그 일정에 맞춰 휴가를 내는 형편이다. 그리고 4월 초 부활절 연휴와 5월 중순 빅토리아 데이 연휴기간 동안 주립공원 예약을 하고 나면 왠지 일 년 치 놀 거리를 준비한 듯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2월 초에 날아오는 카드내역서를 보면 우울해지지만) 물론, 모든 캠핑 예약이 이 날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힘이 달려서 매주 캠핑은 가급적 지양하려 하더라도 여름 동안은 최소 2주에 한 번은 나서기 때문에, 또 포트코브 같은 곳은 일단 주말 예약에 성공하면 어떻게든 가고 싶기 때문에, 1월부터 6월 (10월 캠핑 4개월 전)까지는 매주 예약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요즘은 한 해가 다르게 기후변화가 뚜렷하지만) 서부해양성 기후의 뚜렷한 특징을 지닌 광역 밴쿠버는 보통 4월 초까지는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밴쿠버의 겨울 날씨가 지속되고, 4월 중하순에 잠깐 좋은 날씨를 보이다가 다시 5월 중순까지 비와 꽃샘추위, 그리고 5월 하순이 되어야 비로소 화려한 봄 날씨를 만끽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의 1년 캠핑 일정은 보통 5월 중순 빅토리아 데이 연휴에 시작해서 9월 초 노동절 연휴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는 4월 초 부활절 연휴와 10월 초 추수감사절 연휴는 (한국의 추석이나 설 명절처럼)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이 식사를 하고 회포를 푸는 시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가족 없이 딸랑 둘만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명절 때일수록 더 우리끼리 재미나게 놀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해의 캠핑을 부활절에서 시작해서 추수감사절로 정리를 하고는 한다. 무척이나 높은 확률로 악천후 속 캠핑이 되지만, 그럴 땐 또 그때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일단 캠핑 일정이 정해지면 천천히 사전준비를 시작하는데, 지난해 캠핑을 하면서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점을 메꾸는 일들이다. 주로 장비 쇼핑이나 RV수리가 포함된다. 특히 한 해 동안 캠핑 트레일러를 이곳 저곳으로 끌고 다니다 보면 마지막 캠핑 즈음에는 꼭 비가 새는 곳을 발견하게 되는데, 3월 한 달 동안은 그렇게 비가 새는 곳을 다시 수선하고, RV 전기 시스템 및 타이어 점검, 그리고 정수기 필터 등을 마련한다. 주머니가 깃털처럼 가벼운 우리로선 이 모든 걸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취향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장비 마련도 한다. 몇 해 전부터 아내는 위스키에 재미를 붙여서 캠핑장에서도 맥주보다는 하이볼을 주로 마시려고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얼음공급 계획을 세우는 식이다. 집에 있는 소형 제빙기는 1.8A를 소모한다고 되어있지만 컴프레서 모터가 처음 구동할 때는 최소 6배의 전류를 소모하기 때문에 2000W 인버터를 장만하고 보조 배터리에 연결해서 사용할 준비같은 걸 하게 된다. 이렇게 부품 주문이나 실제 작업이 시간이 걸리는 준비는 적어도 첫 캠핑 일주일 전에는 모두 완비하려고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 예상대로 작동이 될지 기대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캠핑장비가 없다면 미리 구매를 하거나 대여를 해야 하기도 하는데, 보통 캐나다 슈퍼마켓이나 잡화점에서 파는 텐트의 경우 여름용 텐트라고 생각해야 한다. 3 계절용 (겨울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미국시장을 겨냥해서 사양이 만들어지고 광고가 되는 것이라서 그게 플로리다나 텍사스 용으로 만들어졌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웃도어 전문매장에서 파는 4계절용, 혹은 겨울용 텐트의 경우에는 보통 $500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캠핑을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면 무모한 투자일 수도 있다. 이보다 대신 쓸만한 침낭과 슬리핑 패드에 투자할 경우 이후에도 (꼭 캠핑이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산악지역이나 숲 속에 캠핑장이 많은 BC 주립공원의 경우에는 일교차가 무척 심하고 바닥온도는 대기 온도에 비해 7~14도 낮은 경우가 많아서, 믿을만한 슬리핑 패드는 무척 중요하다. 그리고 슬리핑 패드의 가격은 성능보다 휴대성에 더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백패킹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면 두툼한 폼 패드가 좋다.


그리고 대망의 캠핑 일주일 전. 아무리 변화무쌍한 밴쿠버 날씨라고 하더라도 보통 일주일 전 예보는 50% 이상 들어맞기 마련이라서 일기예보를 보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선다. 예를 들어 비 올 확률 40% 이하, 강우량 4mm 이하일 경우에는 악천후 대책을 안 세워도 되지만, 그 이상이 나온다면 나름의 대응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 하룻밤의 캠핑의 경우 웬만하면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지 않고 텐트 캠핑을 하려 하지만, 만일 비가 온다면 트레일러를 사용하거나 상황에 따라 캠핑을 취소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먹거리 준비 역시, 비가 오고 날씨가 쌀쌀하다면 거기에 맞춰 국물 요리 중심으로 준비를 하려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캠핑 형태나 음식 준비 등이 일주일 전쯤에 결정이 나면, 출발 날 하루 이틀 전에 캠핑 장을 보러 나선다. 고기나 밀프렙처럼 유통기한이 빡빡한 경우가 있기에 가급적 출발일에 가깝게 장을 보려고 한다. 식사, 간식 메뉴, 주류 등을 포함해서, 차에 기름도 넣고 필요에 따라 LPG 가스통을 충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캠핑 주말 금요일. 6월 이후 여름동안에는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저녁에 출발해서 캠핑장에 7시쯤 도착하더라도 그럭저럭 세팅을 마칠 수 있지만, 봄, 가을 캠핑의 경우, 혹은 명절날 고속도로 정체가 확실시될 때에는 가급적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한다. 길에서 시간을 다 써버리고 캠핑장을 즐기지도 못한 채 서둘러 노숙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금요일에 출발할 경우에는 목요일 밤에 미리 개인 짐 (옷가지, 오락거리)을 모두 싸 두고, 근무환경이 좀 더 자유로운 아내가 미리 금요일 휴가를 내서 식자재나 생필품 준비를 해둔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내가 집에 오면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짐을 지하 주차장으로 옮기기 시작하는데, 여기엔 맥주와 아이스팩으로 가득 채워 무거운 아이스 박스와 규정상 지하 주차장에 보관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베란다에 있는 20파운드 LPG 가스통 3개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트레일러 앞 토이홀러에 짐을 싣을 때는 주행 중 떨어져서 사고를 낼 수도 있으니 시건장치에 각별하게 신경을 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차례 왕복으로 짐을 모두 싣고 나면 캠핑장에서 할 일을 줄이기 위해 샤워를 하고 미리 옷을 갈아입고 출발하게 되는데, 트레일러를 차에 매다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라, 주변에 통행량을 보고 눈치껏 해야 한다. 이때까지 보통 퇴근해서 집에 온 다음 2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라서, 금요일 저녁 출발은 아무리 일러도 6시나 되어야 나설 수 있다.


일단 길 밖으로 트레일러를 끌고 나서면, 그때부터는 바짝 긴장하게 된다. 7년째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며 캠핑을 하지만, 여전히 저렇게 큰 덩치를 끌고 다른 차선에 피해 안 주면서 다니는 건 어렵다. 토이홀러에 싣은 짐이 떨어지지 않을까 호시탐탐 사이드 미러로 확인하는 건 덤이다. 특히 차선이 줄어들거나, 위험한 커브가 있는 곳은 미리미리 숙지를 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안전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한계가 있는 일이라 더 긴장이 된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아는 곳으로만 캠핑을 가려고 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도 행락철 도로 정체를 뚫고 간신히 캠핑장에 도착하면 한시름 놓인다. 캠핑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포트코브’ 캠핑장의 경우 반드시 캠핑장 입구에서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예약한 사람의 신분증과 함께 대조 검사를 하기 때문에, 입구 앞에서 갑자기 주머니와 가방을 뒤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최후의 난관이 남아있다. 바로 트레일러 후진 주차. 이제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고 하더라도, 캠핑 사이트 진입로가 다 다르게 생겼고, 또 대부분 삐뚤삐뚤한 경우가 많아서 하루는 한 번에 잘 들어갔어도 다음번에는 여러 번 왕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천천히, 뒤에서 무전기로 지시를 하는 아내와 보조를 맞추어하더라도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 자리를 잡아 주차를 마치면 차에서 트레일러를 분리한 후 수평을 맞추는 작업을 하는데, 지반에 따라 수평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역시 시간이 걸리는 일이 된다. 텐트 캠핑을 할 경우에는 후진 주차나 수평 맞추기의 어려움은 없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날씨에 대한 대응을 동반해야 한다. 대부분의 텐트 재질은 완전방수가 아니라서 빗물을 흘러내릴 수는 있어도 한번 고이기 시작하면 안으로 스며드는 건 막지 못한다. 때문에 밤에 비가 온다든지, 캠핑 마지막 날 (텐트를 걷는 날) 아침에 비 예보가 있다면 텐트 위로 타프를 한 장이라도 쳐 주는 것이 안심이 된다. 하지만 텐트 캠핑의 가장 큰 고난은  땅에 페그를 박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폴대 만으로 충분히 형태를 갖추는 자립형 텐트라 할지라도 ‘포트코브’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캠핑장에서는 반드시 페그를 단단히 박고 로프로 여기저기에 고정을 해야 안전하다. 문제는 비가 많이 오는 광역 밴쿠버 지역의 주립공원 캠프 사이트 지반이 무척 단단한 자갈밭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망치질을 한 번 하고 나면 팔목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악천후가 예상되는 캠핑에는 텐트에 비가 고이지 않도록 플라이 역시 쫙쫙 펴서 땅에 박아야 하는데, 어쩔 때는 스무 개가 넘는 페그를 땅에 박아야 할 때도 있다.


짜증부리고 윽박지르고 재떨이 던지고 울며 뛰쳐 나가는 장면이 쏙 빠진 타임랩스에서는 언제나 손발이 척척 맞는 것처럼 보인다


수평을 맞추고 트레일러 벽을 세우거나 텐트를 세워서 집 짓기를 마치고 나면, 가스난로 등 트레일러에 넣고 다니는 덩치 큰 짐을 빼고, 캠핑 기간 동안 쓸 살림들을 텐트나 트레일러에 옮기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들어가 간단한 청소 및 정리를 하고, 그 사이에 나는 밖에서 가제보를 설치하거나 의자 혹은 테이블 등을 세팅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서야 자리에 앉아서 주변 경치를 본다. 선선한 바람도 불어온다. 준비하는 동안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이렇게 앉아 있으니 역시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맥주가 빠질 수가 없다. ‘딱’ 소리를 내며 캔 맥주를 까서는 목으로 꿀꿀꿀꿀 넘긴다. 참으로 맥주란, 어떤 프로젝트의 완성을 축하하는 술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서 저녁 놀이 뉘엿뉘엿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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