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키워준 부모님은 내게 늘 그런 말을 했다.
"넌 인내심이 하나도 없어"
아마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으론 조금 다른 생각도 했다.
"이 집에서 사는 것을 견뎌내고 있는데 얼마나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단 말이야?"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던 아버지는 그런 말도 가끔 했다.
"기회란 성실히 인내하면 찾아오는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인내를 찬양하던 수많은 명사들의 격언 속에 등장하던 그것이 유. 청소년기의 내겐 없었나 보다.
제대하고 얼마 뒤 최저시급은
하루 10시간씩, 30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90여만 원을 받는 수준이었다.
낮에는 대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일을 하며 하루에 쪽잠 서너 시간을 자며 하루에 한 두끼 겨우 먹으며 생활했는데
고졸 스펙으론 최저시급밖에 받을 수 없었고 때문에 아무리 일을 하고 아득바득 아껴봤자 허덕이는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인내심이 있었다면 여러 가지 억울한 일과 더딤을 참아내고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인내심이 없었는지 조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벽돌 운반이라는 중노동이었다.
그 일은 아무런 기술이 없어도 최저시급의 2.5배를 받았다.
얼른 벌어서 내 장사를 해야겠다 결심했는데
하필 운 없게도 악덕 사장 밑에 들어가서 동종업계 평균 작업량의 두배를 운반하는걸 당연한 줄 알고 일했다.
그 일은 처음부터 그만둘 때까지 계속 힘들었다.
군대에서 시멘트 두포-80kg의 짐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내리던 내 체력으로도 초반에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정말 <육체의 힘듦>만으로도 멘탈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부모님의 음성이 뇌리에 떠 올랐다.
"넌 인내심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실체 없는 머릿속 목소리에게 분노를 담아 아니라고 외쳐 답하고 싶었고 그 마음으로 참았다.
모든 고통과 아픔을 참아냈다.
이 예와 같은 인내심.
그게 2-30대 내 방식의 인내심이었다
내게 인내심이란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악물고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었다.
사실 꽤 최근까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인내는 내 유. 청소년기의 인내의 방식과 똑같았다.
반생을 산 분기점에서 나는 그 인내심을 재평가했다.
"그건 약자의 인내심이야. 일종의 정신적 도피지"
안타깝게도 약자의 인내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짓던 노예처럼 돌의 무게를 인내하고 감독관의 채찍의 통증을 인내하는 것처럼 그저 참고 참다가 부서져 버릴 것이다.
인내가 아니라 정신적 도주다.
채찍질을 맞으며 몸을 웅크리고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길.. 저 감독관의 분노가 풀리길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인내는 아무리 많이 해 봤자 소용없다.
아버지의 사업 격언처럼 인내심과 성실을 발휘해 봤자 그런 방식의 인내에 기회 따윈 찾아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기회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찾아온다'니..
이 얼마나 피동적인 말인가..
'찾아오는것'은 또 다른 노예로 부려질 기회다.
실제로 내가 노예처럼 참으며 일을 할 때.
더 높은 임금을 미끼로 나를 스카우트해 가려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었다
틀림없이 그 사람들은 나의 인내심 속에서 무지막지한 노예근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노예형 인내심>으로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나는 이제 그렇게 참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다른 방식의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그건 <압박을 이겨내고 집중해 내는 마음의 힘>이라 정의할 수 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시련이 찾아온다
그 힘든 일들이 사람의 정신을 압박한다
요컨대 우리 삶은 수많은 힘든 일과 그 힘든 일이 주는 압박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그 압박 속에서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죽을 수 없으니 참는 것만 하게 된다.
노예형 인내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어서
삶에게, 또 남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다.
'주께서 나를 강하게 하시려나보다 '
기도하며 버텨봤자 소용없다.
신은 틀림없이 이렇게 탄식하고 있을것이다
"이 정도로 힘들게 했는데도 그저 버티고만 있군.이놈은 대체 어느정도로 멍청한거야?"
사업이 위태롭거나, 소송에 휘말리거나, 은행빚에 허덕이거나, 몸이 지쳐서 힘들거나, 아이들이 난리를 쳐서 혹은 문제가 생겨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되는 압박에 지지 않고 매 순간을 분리해서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평소 중요한 일이나 큰일이 있을 때는 며칠이고 아예 잠을 못 잤고 먹는 것도 입맛이 없어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 그게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알고 보니 그건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나약해서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거지 같은 일이 나를 지속적으로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도 잠을 자야 할 시간에는 자는데 집중해서 숙면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음식을 먹을 때는 고른 영양소를 섭취하고 음식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조금 전까지 애가 온갖 미운 짓으로 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어도 즐겁게 보내는 시간이 되면 집중해서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큰 고통을 겪고 있어도 고객 앞에서 웃을 수 있어야 하고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허덕거려도 다음 사업 투자와 비전을 떠올리고 실천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분리하고 마음을 분리하고 상황을 분리해서 사용해야 한다.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수 없는 우리뇌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압박을 이겨내고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나 운동선수 같은 사람들이 그저 운이 좋아서 잘 풀린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다.
그들은 압박을 이겨내는 힘이 잘 훈련된 사람들이다
스포츠 선수는 관중의 시선과 사회의 평가라는 압박과 눈앞의 선수들과의 경쟁이란 압박을 동시에 이겨내는 집중력을 가지고 있고
배우는 스텝들 혹은 관중들이 주는 압박을 이겨내고 수많은 복잡한 대사와 몸 연기를 착오 없이 펼쳐 낼 수 있어야 한다.
애초에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쟁취한 인간 유형이라는 것이다.
먼 옛날 세상에 끝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온갖 질병과 망망대해와 폭풍이라는 압박 속에서 집중해서 방향을 찾고 키를 잡고 문제를 해결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자들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펀치 속에서 가드를 올리고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카운터를 날리는 복서처럼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매 순간에 알맞은 집중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압박속에서 즐거울 수 있는 것.
꿈 꿀 수 있는 것.
내 마음을 짓누르는 압박을 이겨내는 것.
그게 강자의 인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기로..
아니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이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