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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Nov 29. 2021

베이킹 파우더로부터 비롯된 재앙

이젠 제발 그만 부풀어 올라 줄래?

1908년 출간된 소설 빨간 머리 앤에서는 앤이 목사님께 대접할 레이어 케이크를 만들면서 베이킹파우더를 넣고는 제발 부풀어 올라 달라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앤은 결국 케이크를 말아먹고 원흉으로 베이킹파우더를 제일 먼저 의심한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베이킹파우더가 최신 발명품이었기 때문에 베이킹파우더에 대한 확실한 정보도 강한 믿음도 없었던 탓이다.

 

베이킹파우더의 발명은 1843년 화학자 알프레드 버드가 달걀과 이스트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내를 위해 만든 것이 시초였다.

이후 수많은 화학자들과 기업인들이 베이킹파우더를 개량하고 팔았는데..

최종적으로  베이킹파우더로 성공한 사람은 독일의 약사 아우구스트 외트거 뿐이다.

그가 설립한 닥터 외트거는 오늘날, 독일 기업 매출 18위이자 보험회사와 은행 선박, 해운회사까지 소유한 거대 식품기업이 되었고,

모든 건 마법의 하얀 가루. 베이킹파우더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베이킹파우더의 창시자처럼 여겨지는 외트거는 천재적인 발명가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심리는 잘 알고 있어서 온갖 교묘한 카피와 정교한 광고기술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갔다.

외트거의 가장 위대한 전략 중 하나는

베이킹파우더의 원리에서 착안했다.

바로 '부풀어 오른다는 것'이다.

당시 베이킹파우더는 단지에 담아 놓고 소비자들에게 계량해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외트거는 이 친환경적이고 원시적이며 돈 안 되는 방식을 벗어나 베이킹파우더를 개별 종이 포장지에 20g씩 소분해서 팔았다.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의 종이 포장지는 강력한 마케팅 효과와 이익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종이로 부풀어 오른 상품의 부피는

실제론 훨씬 적게 들어간 베이킹파우더의 실 중량과 실제 가치를 가려주었고 덕분에 외트거는 소량의 베이킹파우더를 대량 가격에 팔 수 있게 되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아울러 작은 크기라 더 엄청난 수로 부풀려진 종이 포장지의 수량 역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외트거는 사업 초기에 자신이 1천만 개의 종이 포장지를 주문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소비자로 하여금 외트거의 베이킹파우더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착시를 일으켰다.


또한 소비자들은 실제론 겹겹의 포장을 벗기고 폐기하는데 더 많은 동작을 소모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노동이 여러 번에 걸쳐서 소분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외트거의 광고처럼)

"이 방식이 훨씬 편리하다"는 착각을 가지게 되었다.

외트거는 제품에 쓰레기를 더 함으로써 여러 가지 가치를 창조해 낸 것이다.

소비자는 베이킹파우더로 과자를 부풀렸지만

뵈트거 박사는 포장지로 베이킹파우더의 가치를 부풀렸고 마침내 막대한 부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이 천재적이며 편리한  상술은 보편화되고 발전되어 이제는 필수적인 것들이 되어 버렸 마침내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했다.

어쩌면 백 년 전의 닥터 외트커는 제러미 리프킨이 언급한 '혁신을 선도하는 0.1%의 창의적인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면 어쩌면 그는 지구 파괴를 선도한 인간의 효시였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모든 문제는 매일 화장실에 드나드는 인간이 자기가 만든 찌꺼기를 보지 않고도 버릴 수 있는 시스템에서 비롯된것인지모른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냐면..

오늘날 인간은 자신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인 변을 보는 행위조차도 변기의 레버를 누르는 가벼운 손짓 하나로 타인에게 완벽히 떠 넘겨 버릴 수 지 않은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외면해 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인지 오류가 자만을 낳고, 자만은 자신의 행동에 당위를 부여하게 됨으로써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쩌면 재활용이란 단어는 일종의 면죄부다.

중세 로마교회가 팔던 것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분리수거라는 간단한 요식행위로 처리도, 책임도 죄다 남한테 떠 넘겨버리고 맘 편히 지구를 파괴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일지도..


생필품을 주문하고 받아서 정리를 하다 보니

고작 한주먹에 쥐어지는 상품의 포장을 위해

팔 가득 안아야 할 양의 쓰레기가 나온다.

이런 짓을 할 때마다 화가 난다.

이런 것들이 필요하고..

난 왜 이런 쓸데없는 쓰레기 포장을 제거하고 폐기하는데 내 아까운 시간과 힘을 낭비해야 하는 걸까.

왜 이 의미 없는 편리를 누리기 위해 내 아이의 미래를 파괴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모든 것들을 원하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구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은 끝도 없이 부풀려져 있는 것인가?

빨간 머리 앤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레이어 케이크를 굽고 남은 쓰레기를 처리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이제 제발 그만 부풀어 올라 줄래? "

어서 불편하고 원시적인 형태로 제품을 구매하는 날이 오기를 갈망한다.


이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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