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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맛 교향곡 Feb 21. 2021

렘지어를 대하는 자세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고


"훌륭한 역사가는 모든 팩트를 기억하지는 않지만, 어디서 찾을지는 아는 사람이란다. 역사는 이야기고, 이야기에서 세부적인 사실은 치장에 불과하거든."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내게 항상 그리 말했었다. 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학생이었던 내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때의 내게 중요했던 문제는 수업에서 A 학점을 받을 수 있을까 였으니까. 아무튼 내게 역사는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단순한 '이야기'라면 시험은 왜 본다는 것인가. 역사가 이야기라니! 역사는 사실이지. 내가 어제저녁에 붕어빵을 먹었으면 역사책은 내가 붕어빵을 먹었다고 적어야지, 카레를 먹었다고 적으면 아니 된다. 즉, 역사학자는 있는 그대로의 장면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시절에 나에게 있어서 역사 공부란 날짜와 사건의 디테일을 외우고, 국정 교과서에 너무나 친절하게 적혀있는 '의의'를 외우면 되는 것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비록 외세에 일정 부분 의지했더라도 우리 민족에 의한 통일 어쩌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 역사를 공부해보니 '사실'을 기록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라. 우리가 타임머신을 가지지 않아 아직 과거로 돌아가 직접 볼 수 없는 이상에야 역사는 필연적으로 '서술'의 문제가 남아있는 학문이다.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들도 상반된 증언을 전하는 경우가 많은 와중에 과거의 일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후대에 전하기란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는 오래간만에 내면에 잠자는 역사쟁이로서의 본능을 일깨우는 흥미로운 독서였다고 평가한다. [역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부터 시작하여 랑케, 신채호를 거쳐 아직까지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총, 균, 쇠], 그리고 [사피엔스]까지를 두루 살핀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서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피고 역사를 어떻게 서술했는가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시민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나는 역사가 문학이라거나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프롤로그 중에서


즉, [역사의 역사]는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책들의 역사책이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가 전하는 모든 메시지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역사라는 학문에 절대성과 보편성을 부여하려는 경거망동한 수작에 경계의 태도를 견지하는 그의 태도에 동의하며 읽어 내려갔다. 즉, 무릇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고, 이야기의 형태로 전승되는 것이란 말이다. 위의 붕어빵을 예로 들어보자. "아무개 가 붕어빵을 먹었다."라고 서술하면 그건 사실일지언정 역사는 아니다. 왜 붕어빵을 먹었고 어떤 시사점을 지니는지, 그리고 왜 카레가 아니라 붕어빵을 먹을 수밖에 없는지를 적는 것이 역사학자의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단편적인 구슬들을 꾀어 역사서라는 보배로 엮어내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학자들이 꿈꾸는 목표일 것이다. 생각건대 올바른 역사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어느 한 가지의 해석만을 옳다고 인정해버리는 것은 이북의 독재정권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며 비판과 토론에 의해 발전하는 학문으로서의 가능성을 상실해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학부시절 고문서 장서관에서 발견한 이탈리아의 아시아 지도. 왜 극동아시아는 "어물쩡 넘어가" 버리고 인도와 향료 제도는 세심한 디테일을 부여했을까?



1차 사료를 읽는 사학자들은 사료의 직접적인 내용을 읽고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 해석하는 작업을 거친다. 위의 지도에서 왜 동아시아 지역은 바다 괴수들이 넘치게 그려놓고, "어물쩡 넘어가"버린 반면 인도와 향료 제도 일대는 극한의 디테일을 보여주었을까? 아마도 이탈리아의 항해사들이 자신들의 이득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향신료의 생산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간단하게 동북아시아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왜 몰랐지? 마르코 폴로가 가져간 지도가 몇 장은 있지 않았을까? 지도 한 장을 보고도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마추어 사학도인 내가 이럴지언데 전문적인 역사학자들은 어떻겠는가.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인식했으면 좋겠다. 역사란 끊임없는 해석의 과정이고 그 해석을 "썰"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유시민 작가가 역사가 문학의 연장선이라고 서술한 것인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최근 위안부 역사를 왜곡하는 논문으로 하버드 로스쿨의 렘지어 교수가 대차게 까이고 있다. 그 양반에게 우리는 "쪽XX 앞잡이"라는 식의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토해내기 보다는, "당신의 이야기에는 중요한 맥락과 사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라고 역사쟁이로서의 반박을 하는 것이 어떨까.



상대방이 입에 똥을 묻혔다고 해서 우리까지 묻힐 필요는 없으니까. 





*본 서평은 영내 진중문고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양질의 도서를 장병들에게 제공하는 국방부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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