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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itas Jan 18. 2019

Subjective/Objective Space

주관적/객관적 공간(싯다르타의 공간)

그들의 허영심, 탐욕이나 우스꽝스런 일들을 이제 그는 웃음거리가 아니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 사랑스러운 일, 심지어는 존경할 만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 외동아들에 대해 우쭐해하는 아버지의 어리석고 맹목적인 자부심, 몸에 달고 다닐 장신구를 얻기 위하여, 그리고 사내들이 자기들을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하여 애쓰는 허영심 많은 젊은 여인들의 맹목적이고도 거친 열망, 이 모든 충동들, 이 모든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들,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억센 생명력을 지닌, 끝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여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충동들과 탐욕들이 싯타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어린애 같은 짓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한한 업적을 이루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고통을 겪고, 무한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며, 그는 그들의 모든 욕정들과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바로 생명, 그 생동하는 것, 그 불멸의 것, 범을 보았다. 그런 인간들은 바로 그들의 맹목적인 성실성, 맹목적인 강력함과 끈질김으로 인하여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고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지식인이자 사색가인 자기가 그들보다 앞선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미하고 사소한 그 한 가지란 것은 바로 그 의식, 즉 모든 생명의 단일성을 의식하는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에서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한다. 그는 인생의 수많은 여정의 끝에 결국, 모든 이들은 각자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싯다르타는 누구인가. 싯다르타는 단 한 명인가. 싯다르타는 결국 우리 모두이지 않나. 고빈다, 석가모니, 카말라, 카마스와미, 바주데바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생의 한복판을 걸어왔다. 모든 이들은 그 풀이의 방식이 어찌 됐든 제 나름대로 삶의 깨달음을 얻었고, 깨달음에 따른 모순대로 살았다. 외형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싯다르타의 공간 안에서 제 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뇌하고, 자신이 세워둔 가치에 따라 계속해서 선택하며 살아가지 않나. 싯다르타여. 당신은 어떤 생각과 가치관으로 생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당신이 존재하는 공간의 모습에 만족합니까. 노년의 당신이 머물 그곳의 풍경은 어떠한가요. 부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내면이 평안한 곳에서 느긋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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