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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itas Mar 21. 2019

이렇게 시시한 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어떠한 활자 덩어리에 시선이 가만히 멈춘다. 멈춰 선 생각의 한 복판에 선채로, 가만히 머릿속에 그 문장을 집어넣는다. 머릿속에 넣은 그 텍스트들이 잡념으로 헝클어진다. 헝클어진 그 뭣도 아닌 문장과 잡념의 한 움큼의 것들은 결국 흩어질 허망한 한낱 허무의 귀결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꼴 같지도 않은 체념이고 어쭙잖은 허세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살아있는 삶의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가치 있게 때워내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살아있는 한 조각의 증거라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상념들을 기록으로 남겨 먼 훗날 이러한 시간의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견뎌 내었는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가끔 내가 쓴 예전의 글들을 다시 읽어 내려갈 때가 있다. 나조차 나의 글이 낯설다. 그러함은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타인인 양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였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기억에서 잊혔을 그때의 나. 지금의 나도 언젠가는 없어질 테지. 없어져도 상관없을 지금의 나지만, 혹시나 살아있을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흔적을 남기며. 이런 시시한 과거의 너도 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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