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금씩 비우는 일상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좁은 방 한편 책장에 빼곡히 쌓였던 책을 정리하고 있다. 비교적 수요가 있는 책들은 되팔고, 그렇지 못한 책들은 기부를 하고 있다. 그러니 책장에 여유가 생겼다. 내가 정말 남기고 싶은 책들이 무엇인지 다시 알게 되었다. 쌓였던 책들에 가려져 읽히지 않았던 책등이 얼굴을 내민 모습이 좋다. 언젠가는 꼭 읽겠다고 생각만 하고 몇 년간 방치만 했던 책들과 한 번 들춰보고 다시는 펼치지 않는 책,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책에 대한 나의 가치 판단이 현저히 낮아진 책들은 처분하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쓸 일이 없었던 각종 고지서를 비롯한 서류들은 분쇄하여 버렸다. 초중고 시절에 받았던 상장들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쌓아 두었던 종이 뭉치들은 책장에서 쓸쓸히 죽은 채 기생하고 있었던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것들을 치우니 내가 정말 필요한 것들을 여유롭게 놓을 공간이 생겼다.
연락하지 않는, 연락하지 않을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정리했다. 덕분에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횟수가 늘었다. 덕분에 내가 정말 신경 쓰고자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횟수가 늘었다.
요즘 모든 것을 비우고 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