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덩어리가 내 몸을 짓이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감정의 단초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적이 있다. 우울함의 원천은 나에게 세상에 대한 허무함과 원망을 안겨다 주는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했다. 명확하지 않은 모양새로 덩치만 큰 그 검은 생각들은 나를 글 쓰게 했고, 그리게 했다. 거기에 덤으로 불안까지 안겨다 주었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히 말하건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불안을 껴안은 채 홀로 은신하는 자와, 불안을 떨쳐 버리고 싶어 마구잡이로 무엇이든 하려는 자. 나는 혼종이었으나,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까웠다. 우울과 불안은 나를 끝 모를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하였으나, 가끔씩 나에게 빛을 건네어 주기도 했다. 너무 우울해서, 너무 불안해서 시작과 끝의 격차가 너무 심한 탓에 기준점의 감각을 상실한 난 낯선 이의 공손한 손짓, 친절한 눈짓 하나에 내 마음을 다 내주었다. 그 사소한 것들이 나를 살아있으라, 북돋았던 적이 있다. 그 덕에 빈번하게 상처 받는 일도 많았으나, 그렇지 않은 적도 있으니 완전히 나쁘다고는 볼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