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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itas Jan 28. 2018

자기소개의 시간

Copyright 2018. chanmilim.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인상 깊은 자기소개의 시간이 하나 있다. 대학 시절 필수 과목인 글쓰기 수업 시간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여서 그런지, 첫 수업에 대한 설레는 마음보다 여느 수업과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체념으로 빈자리를 찾아 앉아 교수님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오대오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교수님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 같은 차림새(?)답다고 짧은 생각이 스쳤다.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수업이 다 그렇듯 간략한 수업 소개와 다음 시간에 필요한 책 따위의 준비물이나 알려주고 끝날 것이라 생각했었다. 교수님은 이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강당 벽면에 띄웠다. 커피 사진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커피라며 커피에 관한 짧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 늘어졌던 허리가 곧게 펴졌다. 그리고 이어 스페인의 건물 사진이 하나 나왔다. 스페인에서 유학을 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우리에게 공유하며 그때의 나는 이랬었고, 당신들만 했었다. 지금 강당에 앉아계신 자네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이따금씩 난다며 그리운 듯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던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듣고 싶었던 수강신청에 실패해 수강했던 과목이었지만, 나는 그 자기소개의 시간 때문에 이 수업에 들어온 것이 참 다행이고, 앞으로의 수업들이 굉장할 것만 같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첫 만남에서 솔직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진솔한 사람이 하는 수업은 어떨까? 분명 좋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었다, 문득, 그때의 생각이 난 것은 내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의 시간을 거쳐오면서,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며 그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왜 자기소개라는 것이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직업 이어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형식적인 말로 끝맺음 나느냐는 얼토당토않은 삐딱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렇게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바깥에 나서기 전에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죠. 겨울은 싫어하고, 여름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겨울의 눈 오는 날은 좋아하고, 여름의 비 오는 날은 싫어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술자리에서 남이 따라주는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따르는 것도요. 그냥 각자의 템포에 맞춰 술을 마시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이가 조금 익숙해지고, 서로에 대해 조금 알고자 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술 한잔 기울이며 지나온 세월보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이야기 나눠 보는 자리를 갖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 새로운 인연을 만나 정말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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