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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itas Feb 04. 2018

나에게 박하지 않은 나

Copyright 2018. chanmilim.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용돈 통장의 잔고가 만원대로 접어들면, 나는 절로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한 달 동안 무얼 했길래 돈은 이렇게 항상 모자란 거지'란 의문. 그리고 그 지출의 흔적은 항상 나에게는 없다.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지만, 월마다 나가는 자잘한 금액이나마 줄여보려고 정액제를 취소한지도 오래다. 덕분에 도시의 소음을 벗 삼아 출퇴근길을 걸은지도 꽤 되었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했던 때도 한 때. 작년 한 해 동안 읽지 않는 책은 팔거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거나, 버렸다. 꼭 '소장하고 싶은 책만 사자'라는 생각과 함께, 두 달에 한 두권 정도는 사긴 하지만 그것도 포인트와 할인 쿠폰을 싹싹 모은 뒤에야 사는 편이다. 화장품도 6개월에 한 번씩 사는 편인데, 그때마다 그 돈이 아까워 인터넷으로 최저가로 파는 곳을 철저하게 알아본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로드샵 화장품을 쓴다는 게 가끔 한심할 때가 있지만, 다 내가 선택한 것이니 누굴 탓하랴. 


이러한 문제는 적은 급여의 이유도 분명 있지만, 본질은 나에게서부터 비롯된다. 나는 항상 나에게 참 박했다. 엄마는 옷을 하나 사려면 제대로 된 것을 사서, 오래 입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난 항상 그 말을 흘려듣는 편이었다. 싸고 괜찮은 옷을 잘 관리해서 오래 입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가격대가 생각했던 기준치보다 높으면 눈 앞에 아른거려도 절대 결제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그 돈의 출처는 다 어디로 쏟아져 버렸단 말인가. 용돈의 절반은 가족에게로 간다. 받고서도 좋은 말은 듣지 못하는 편이지만, 유흥비로 보태 쓰시라고 드린다. 친구가 많지 않은 나는, 소수의 친구들에게 뭔가를 사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때에 돈이 조금 나가는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디 보자. 아, 강아지. 사료와 간식은 가장 비싼 것으로. 나이가 많은 편이라 건강에 신경 써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 때문에 평일에 항상 바깥에 나가 있는 나는 항상 우리 강아지에게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강아지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남는 돈은 나에게 쓴다. 커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출근길에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먹긴 하지만, 다른 날은 거의 회사 탕비실에 있는 커피를 마시거나 편의점에서 할인행사 제품을 사 먹는다. 그리고 그 외에는 없다. 나를 위해 나는 뭘 선물해줬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에게 쓰지 않고, 타인을 위해 쓴 돈이 아깝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돈을 쓰는 내내 그들보다 내가 더 행복했다. 하지만,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 왜 나는 타인들에게 그렇게나 친절하고 후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쓰는 돈에는 왜 그리 박하게 구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평소에 나를 칭찬하지 않는 편이다. 남들이 무언가에 대해 잘했다고 호의의 말을 전해도, 그것이 그저 겉치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는 아주 특별한 날이 있지 않는 한 바깥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 나는 삼백육십오일 항상 나와 함께이면서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걱정했다.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바뀔 리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만, 점차 바뀌었으면 좋겠다. 기록하지 않으면, 생각이 흩어져버리니까. 여기에 이렇게 쓰는 거다. 


나에게 박하지 않은 내가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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