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anitas Feb 13. 2018

텍스트로의 도피

Copyright 2018. chanmilim.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나는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책을 읽는다. 보통 독서의 시간대는 출근하기 전의 새벽, 회사에서의 점심시간, 퇴근 후의 따뜻한 침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책을 읽기 위한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 또한 그렇다. 책을 언제나 나의 옆에 두게 된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손목시계를 차는 것을 깜박해도, 책을 챙기는 일은 깜박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자문한 적이 있었지만, 답은 '모르겠다'였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지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생각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대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럼 질문부터 틀린 것일까?)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뭐라도 하는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것이던 지식이나 감성을 차곡히 쌓아 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별 볼일 없는 직장에 다니고, 별 볼일 없는 일상을 보내고, 별 볼일 없는 집에서 사는 나는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 텍스트 안에서 활개를 치는 근사한 날파리 한 마리가 된다. 어떤 단어에 눌러앉아, 그 단어에 대해 사색하고 어떤 문장에 누워 밑줄을 치고 속으로 되뇌면서 나도 그러한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 나는 낭만적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낭만적인 일은 절대로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데, 책 속에는 낭만이 있다. 슬픔도, 절망도, 쾌락도, 즐거움도, 사랑도, 고민도 다 낭만이란 단어로 점철된다. 그래서 텍스트로 나는 도피한다. 모든 장의 텍스트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온다 하면 나는 심장이 뛴다. 현실에서 누가, 어떠한 것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가. 나는 허구 속으로 도피하고, 그 안에서 안식을 얻는다. 비겁하지만, 손쉽다. 누추하지만, 낭만적인 일인 것이다. 독서라는 것은.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박하지 않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