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랑하는 공간이 있다. 하지만 어두운 면이 없는 공간은 없다. 어두움은 그 사랑을 시험한다. 사랑하는 공간은 한순간 어두운 터널이 된다. 그 터널을 통과하면 사랑은 깊어지고, 통과하지 못하면 사랑은 길을 잃는다." 공간의 요정/ 김한민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도 사랑하는 공간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면야 있다. 하지만 지금의 공간은 어떤 특정한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첫째, 나 이외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것.
둘째, 조용한 음악이 흐를 것(가사는 없는 연주곡이어야 한다).
셋째, 벽 사이로 들리는 정체모를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수돗꼭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뭔가 굴러가는 소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시간대의 공간을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간의 전부를 품을 수 없으니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이란 전부를 다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이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공간에는 어두움이 있다. 아주 빈번하게 이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는 약 57km의 스위스의 고트하르트베이스 철도터널과 같이 느껴진다. 나는 그 공간 안에서 끝도 없이 무기력해진다. 움직임이란 기껏해야 이불 위에서 자리를 고쳐 눕는 정도일 뿐이다. 이 공간을 사랑할 수 없는 그 시간이 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야 만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꿈을 꾸는 사람처럼 현실의 시간을 그냥 낭비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내 탁상시계를 덮어 놓는다. 나는 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아니, 이 터널의 끝에 출구가 있기는 할까. 근데, 이 터널에 출구가 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누구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