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한다. 그림은 신기하다. 각 장의 그림마다 감정이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불안과 초조, 긴장의 알 수 없는 형체의 감정을 쏟아 내곤 한다. 그럴 때면 기분이 아주 좋다. 몸속에 기분 나쁘게 저장되어 있던 그 묵직한 무언가를 배설한 느낌이 든다. 이른 아침에 시원하게 쾌변 한 것처럼 말이다.
직장 생활과 동시에 전시를 준비하며 참 빠듯하게 작업했다. 그 빠듯함을 부연 설명하자면, 그건 손의 놀림에 있지만은 않다. 마음이 그랬다. 머릿속이 그랬다. 정작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드로잉들을 전시를 위해 가려내며, 몇 장을 추려내었다.
그 몇 장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튀는 그림들이 있었다. 왜 눈에 튀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분명 괜찮은데, 왜 괜찮지 않아 보일까. 왜 마음이 가지 않을까. 아, 이것들에는 이야기가 없었다. 아, 이것들은 전시를 위한 그림인 것뿐이었다. 이것에는 마음이 없었고,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이건 과감히 ‘과거’의 폴더에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그림을 올리는 이유는, 이 깨달음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서.
이야기가 없는 그림이. 목적이 없는 그림이. 좋을 리 없다. 해야만 하는 것에는 감정이 없다. 그것은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런 그림을 앞으로도 계속 안 그릴 수야 없겠지만, 한번쯤 멀리서 계속 바라보며 생각해보자. 이야기가 없는 그림이 얼마나 재미없고 맛이 밍밍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