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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itas Jul 11. 2018

보통의 아침


눅눅한 날씨 때문인지, 아님 다른 연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새는 일찍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뭐 일찍 잡니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 정도에 눈을 뜨고요, 일어나자마자 책상 위를 봅니다. 전날에 벌려 놓은 일들이 그 위에 쌓여 있는 풍경이 요즘은 꽤나 보기 좋습니다. 저것들이 내가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된 이유라고 생각하면, 제가 오늘을 살아내야 할 삶의 이유가 겨우 하나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세수도 하지 않고, 요의도 해결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마무리해야 할 공간에 붓질을 합니다. 어떨 때는 붙이기도 하고요, 어떨 때는 칠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면 해가 뜹니다. 요즘에는 날이 워낙 궂어서 해가 뜨는 것을 잘 못 본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새벽에서 아침 사이에 거실에 담겨지는 해의 광량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그 변화를 짐짓 관찰하고 있는 것 또한 나쁜 기분은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별 소득 없는 일에 바지런을 떠는 사이에 제 귀여운 친구가 안방에서 발톱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굳이 몸을 돌려 바라보지 않아도, 저 친구가 오늘 아침 제일 먼저 화장실을 방문하는구나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피식 웃음이 흐릅니다. 나 다음으로 집 안에 소음을 내주는 친구가 사람이 아닌, 강아지라고 생각하니 귀엽지 않나요? 해야 할 일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이 납니다. 저는 원래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성격이 못됩니다. 하나씩 쪼개서 매일 하고, 아주 한참이 흐른 뒤에야 그것들을 다 합치고, 또 시간이 더 지나서 완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결과물을 냅니다. 그것들은 어쩔 때는 한 없이 한심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내가 정말 이걸 만들었단 말이야? 하고 자화자찬하기도 합니다.


그저 글이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뭐 쓸 것은 없고, 그냥 근래의 아침 일과를 써 봅니다. 글을 쓰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이것 보세요. 나는 그냥 나의 아침 일과를 썼을 뿐인데, 벌써 열 행이 넘는 글자들을 하얀 종이 위에 적어 놓았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사람은 되기 싫어서, 그냥 나는 매일 아주 조금씩, 무리하지 않게 틈틈이 글을 쓰고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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