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전에 취직하기
프리스쿨에서 일하고 어느새 2주가 흘렀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하고 만으로 9년이 지난 현재. 9년간의 육아, 살림, 휴식의 시간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최고로 바쁜 2주를 보낸 것 같다. 남편이 종종 내게 ‘백수가 과로사하겠다.’라고 하던 말처럼 살림과 육아는 그대로인데 일까지 함께하는 느낌.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효율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의 일과는 이렇다.
6:50 기상
7:15 남편 출근
7:30 아이와 아침식사하며 점심 도시락 싸기
8:40 아이 등교시키자마자 프리스쿨로 출근
8:45 - 11:15 오전반 근무
11:15-12:15 선생님과 교실에서 점심
12:15-2:45 오후반 근무
2:45-3:05 교실 뒷정리
3:00 아이 하교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기
3:30 방과 후 일정(스포츠, 음악 등) 라이드 및 장보기
5:00 집으로 돌아와 씻고 집 정리
5:00-6:00 저녁준비
6:30 함께 저녁식사
7:30 - 8:30 주방 정리 및 다음 날 점심 도시락 준비
9:00 아이 취침
9:30 빨래 및 청소 그리고 내 시간. 글쓰기
10:30 취침
하루하루 일과를 초치기 하듯 매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그래도 온전한 주부로서 즐기던 그날들이 아주 오래전 같지만 내게 그 시간보다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더 값지다.
나는 애초에 한량처럼 놀 팔자는 아닌가 보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그런 성격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틈만 나면 이렇게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것이 육아와 살림인데, 나는 그 훈련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의 경력으로 쌓았기 때문에 프리스쿨에서 일을 하면서도 크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프리스쿨에서 일을 하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왜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종인지 알겠다.
아! 왜 국가에서 추가 시급(6불)까지 줘가면서 종용하는지 알겠다.
아! 왜 시작도 하기 전에 봉사활동으로 일해보라는지 알겠다.
아이를 참 좋아하고 여러 상황이 와도 웬만하면 당황하지 않는 나인데 문제는 부모들이다.
B라는 아이가 있다. 3살이고, 남자아이이다. 너무나 귀엽게 생기고 총명한 아이이다. 아직 언어는 어눌하지만 그래도 말을 잘하는 편이며 표현도 잘한다. 그 아이는 학교에 적응을 어렵게 막 한 아이이다. 내가 처음에 본 그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서 한동안 엄마를 붙잡아 두고 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엄마도 기회를 보면 몰래 슬쩍 나가다가 결국엔 아이의 울음소리에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눈여겨봤던 점은, 학교에서 잘 놀다가도 엄마가 데리러 오면, 선생님과 엄마를 때리며 ”Go away!"를 외치는 아이였다. 너무 좋아하는 친구와도 헤어질 때면 아이를 밀쳐내며 ”Go away!"를 외쳤다.
원장선생님의 부재 시에 내가 보조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엄마는 내게 고맙다며 마음이 놓인다고 이야기해 줬다.
나는 그 아이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며 나로 인해 이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메이선생님이 대신 오시고 함께 일하며 그 아이의 행동은 너무 어려워졌다.
”Go away!"를 수시로 말하며, 선생님을 발로 차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식사시간에 음식으로 장난치고 먹지 않아서, 선생님은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밥을 다 먹었으면 치우자고 말하신다.
그러자, 도시락통을 밀며 책상에 발을 올려놓는다. 선생님께서 계속 권유하자, 이제는 선생님을 발로 찬다.
”선생님을 자꾸 발로 차고 학교의 룰을 따르지 않으면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
”Tell her!, Go away!" 그리고는 손으로 얼굴을 치려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 상은 밥을 먹는 곳이고 아이들이 지금 아직 먹고 있다. 정리하기 힘들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을 뛰어다닌다. 만 세 살인 아이의 행동이다.
프리스쿨이 데이케어와 다른 점은 학교를 준비하는 ‘학교’라는 개념의 공간이다. 내년에 갈 킨더가든을 준비하는 곳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고치고 룰을 따르며 노력한다. 아이들이 배고프거나 졸리면 상상밖의 일을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행동을 본적이 거의 없다. 선생님 또한 그간의 경력으로 이러한 행동은 정상범위 밖의 행동이라고 하셨다.
아이는 어느 정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부모가 온 다음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내게 대화를 요청하며 대타로 온 선생님의 탓으로 돌린다.
”당신도 알잖아요? 우리 아이 아주 잘 적응하고 있었어요. 그렇죠? 저 선생님이 와서 아이를 다 저렇게 행동하게 하는 거라고요. 그리고 아들이잖아. 여자애들이랑 다른 거 당신도 알죠? Go away? 우리 아이에게는 그건 긍정의 표현이라고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이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아이들은 말과 행동을 부모에게서 배운다. 아이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을까?
그 아이의 엄마는 내가 그나마 편했는지 대타로 온 메이선생님의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말을 듣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그저 듣다가 “그래도 그 표현보다는 다른 표현으로 돌려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는 뜻을 다르게 해석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그러자,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아이가 어디 쉽냐며 핑계를 댄다. 그러면서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연신 이야기를 해댄다.
하루가 그렇게 끝나고 메이선생님과 교실을 정리하며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아무래도 경험이 많으시니 이런 일도 종종 있었겠죠? 이 이야기를 원장선생님께 하실 거예요?”
그러자, 하긴 할 건데 대타라서 굳이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고 조용히 지나가실 거라고 하신다.
“선생님, 이제 대타로 다른 학교 지원 잘 안 하시겠죠?ㅎㅎ” 그러자, 원장선생님의 다급한 부탁으로 하셨지만, 12월의 휴가가 기다려진다고 돌려 말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농담끼 섞인 이야기를 하신다.
“어때? 이 일을 계속해서 할 거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다르죠? “
그 사건 말고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울기도 하고 떼쓰기도 하지만, 여기가 공동체 집단인 것을 인지하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을 기본적으로 아니까 대하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에너지를 학교에 쏟아붓고 내 아이를 만나는 내 상태가 많이 달랐다. 긍정적으로 말이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감사하게 되었으며,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할 때에도 그 아이들에게도 다정했으니 우리 아이에겐 더 다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유아교육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유치원 교사가 되려는 마음은 아니다.
전공을 살려 일을 하려니 캐나다에서 학위가 없이 인맥을 만들기 어렵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여 하나의 끈을 만들고자 첫 발을 내딛었는데, 그 시작부터 운은 참 좋았던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새로운 도전을 굳이 고생스럽게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지만 아직까지는 이 하나하나의 일들이 감사하다. 이 사회에 발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쉬운데 왜 진작 시작하지 못했지?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이제 때가 되어, 9년의 시간이 흘러 이 시기가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첫 시작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설레고 기다려지기보다는 그저 내 인생 한 페이지가 되리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