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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할 때 설레는 마음이 아직 생생하면서도 한참 전 일 같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돌보러 영국에 가신 원장선생님은 종종 이메일로 우리에게 학교를 대신 지켜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말과 현황을 말씀해 주신다. 그간 선생님께는 주로 어머니를 잘 돌보고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을 했었는데, 마지막 주를 앞둔 시점에 메이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메일을 보내셨다.
“선생님, 스스로 해결해야하는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당신께 알려야 할 상황이 있어서 메일 드립니다. B라는 아이가 통제가 되질 않습니다. 혹시 그동안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했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머니께 일찍 데리러 오라던가 함께 상황을 지켜보게 해도 될까요?”
메이 선생님은 40명가량의 학생을 둔 프리스쿨 원장선생님이시다. 첫날부터 한결같이 친절하고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창작활동을 만들어주시고 내게는 많은 것을 알려주시는 분이어서 너무 감사한 분이다. 그런데 딱 한 아이의 엄마는 이 분이 못마땅한 것이다. 바로 B의 엄마.
아이는 오늘도 Go away를 외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물건을 던지고 아이들을 밀고 다른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창작물들을 부수며 돌아다닌다. 학교에 들어오자마자부터 30분 정도는 말도 잘 듣고 “Could you please say again with kind words?”, “Can you say like me, please help me teacher?”
이렇게 말하면 곧잘 따라 한다.
그 말은 학습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후에 자기가 먹은 도시락을 안 치우려고 화를 내고, 손을 씻으러 가서 앞에 줄을 선 아이들을 다 때리고 밀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Can you clean up your snack box? Can you pack your backpack? Can you lineup behind friends?”
이 모든 말들이 이 아이에게는 부정으로 들리고 바로 Go away!라고 외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엔 참을성 많은 다른 아이들마저도 도와주려 하다 화를 당하는 꼴이 되니 울고 다치게 되면,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뜸 하는 소리가, 헬로 한 마디 없이,
“원장선생님 언제 돌아오죠? 원장님 계실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분명 그러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아이에게 이유가 뭔지 물어는 봤나요? 우리 애는 절대 그런 애 아니에요. “
이러면서, “Hey baby, what’s wrong? mommy is here, look at me…”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엄마에게 Go away를 외치며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는 웃으면서, 아이가 좀 피곤한가 봐요. 이러면서 둘러댄다.
나는 안다. 원장님께서도 익히 겪어온 상황이라 가시기 전날 이메일에도 이 아이는 케어가 어려우니, 일찍 엄마를 불러도 된다고하셨었다.
모든 아이들이 돌아간 후, 메이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아이는 그럴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른 아이들도 이제 그 아이가 다가오는 걸 두려워해요. 근데 제가 볼 땐 충분히 가르치면 잘 따라올 가능성 있어 보여요.”
그러자, 선생님은 단호한 얼굴로 내게 말하셨다.
“맞아요. 그 아이는 잘못이 없어요.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근데, 우리가 미래를 볼 순 없지만, 그동안의 데이터로 판단해 보자면 저 아이는 커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엄마가 아이를 여전히 갓난아이취급을 하고, 성장하게 두질 않아요. 그게 나중에 아주 큰 문제로 다가올 거예요. “
“선생님 학교에도 저런 성향의 아이들이 많이 있어왔겠죠?”라고 여쭤보자 다시 한번 단호한 얼굴로 말하신다.
“아뇨? 저는 정말 이토록 무례한 엄마는 처음 봅니다. 당신이 이제 학교과정에 들어가면 이 것에대해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교수님과도 한번 상의해보세요. 학문적으로 도움될거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구대상’이라는 말로 들렸다. 이틀이 남은 시점에 메이선생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보다 이제 곧 해방이라는 생각에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매번 울음으로 해결하려는 아이도, 항상 투닥거리며 소리가 커지는 쌍둥이들도, 영어가 아직 서투른 3살짜리 한국아이도 나 또한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일을 매번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지만, 내게 익숙해진 아이들은 놀다가 다치거나 속상하면 울며 달려와 안기고, 어디서 만나든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 활짝 웃는다. 이 작은 아이들의 1년 후가 기대되고 얼굴을 떠올리면 웃음 짓게 만든다.
나는 아마도 우리 아이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이런 버라이어티한 성장과정을 다시 보고싶어서 이 일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순간이 얼마나 값진 순간인지 지나고 나서 더욱 깨닫고 있기에 그 아이들의 부모와 조금이라도 더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게 이 열정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