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쿨 마지막 날, 유난히도 빛나는 아이.

50전에 취직하기

by Vanlomo

마지막날을 앞둔 저녁.

갑자기 메이 선생님과 헤어질 생각에 너무 아쉬워서 저녁에 편지를 썼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제게 소중한 기억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나 이 동네에 있으니 선생님 시간되실 때 프리스쿨로 찾아뵐게요…”

한국에서 사 온 마스크팩과 함께 포장을 하고 잠들었다.


마지막 날.

아침 7시 38분. 이제 막 아침을 먹으려 하는 참에 메이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온다.

“Thank you for a wonderful 3 weeks at ***preschool. It was an enjoyable experience and I had a great time working alongside you. Thank you for your assistance and I am so glad that you are there.

I have written a reference letter for your future applications to any preschools. I wish you all the best and good luck in your ECE career.”


추천서에는 30년 경력의 프리스쿨 원장으로서 바라보는 나에 대한 장점과 함께 일하며 느낀 점에 대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적어주셨다. 마지막에는 당신의 이메일, 연락처, 근무날짜 등 상세히 적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런 분을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함으로 가득한 아침이었다.


오전반을 마치고 선생님과 마지막 점심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각자 싸 온 도시락을 아이들이 앉는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아 먹으며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아파서 자주 오지 못한 중증장애아이 L과 최근에 SN(Speacial Needs) 자격을 취득한 선생님인 T도 마지막 날을 함께 했다. L과 T는 3개월을 봐온 친구들인데 벌써 너무 아쉬웠다. L은 처음에 내가 마주했을 때 만 3세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갓난아기처럼 모든 것이 입으로 들어가고 바닥에서 누워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지금 놀랍게도 엄청난 발전을 보여줬다. 가끔이지만 앉아서 놀다가 웃기도 하고 눈에 초점 없는 것 같으면서도 나를 알아보는 것을 느꼈다. T선생님은 가끔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외투를 입을 때 L을 내게 맡겼는데 그 가녀린 몸에 힘은 얼마나 강한지 몸부림을 칠 때면 나도 온몸의 근육을 다쓰며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부드럽게 대하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이의 발전을 전혀 모르겠지만, L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대해주는 T선생님은 작은 변화 하나하나 모두 캐치해 가며 아이가 발전하고 있는 부분을 상세하게 부모님께 인지시켜줬다. 나 또한 아이의 성장을 조금이나마 옆에서 보며 아이를 더욱 응원하게 됐다.


장애 아이가 학교에 함께 있는데도 아이들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처에 오면 들고 있던 장난감을 던지기도 하고 침범벅을 만드는데도 다가와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준다. 아이들은 그게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T 선생님께 묻는다.

”선생님! L에게 이 종이 줘도 돼요?”

그러면 T선생님은

“미안해. L은 힘이 너무 강해서 그것보다는 더 지속력 있는 장난감이 필요할 것 같아.”

아이들은 이것저것 찾다가 끝내 딱 알맞은 장난감을 찾아온다. 아주 찰나에 관심을 보이다가 바닥으로 집어던져도 아이들은 잠시라도 내가 준 물건에 관심 가진것이 고맙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드는 생각은, 장애아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장애우라던지 비장애인이라는 명칭을 정할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나와 다른 아이는 언제든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이며 어떻게 해야 배려하는 상황인지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L이 몸이 안 좋아 울며 소리만 지르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T도 이런 상황은 처음 봐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으나, 부모님 모두 근무 중이라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잠시 드는 생각은, 중증장애아이가 있는데 위급한 상황일 수 있는데 어떻게 두 분 다 연락을 안 받지? 싶었다. 그러다가 이내 몸이 불편한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다가 자신의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단 2시간 반을 얼마나 기다렸겠나 싶었다. 그리고 이 약하디 약한 존재의 아이가 사회생활이 가능하게 만드는 이 사회에 대한 감사까지 느껴졌다.


어제 L은 집에 가서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학교이야기, T선생님 이야기를 하자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며 신나 하는 표정과 행동을 했다고 말해줬다. 아이도 다 안다. 아무리 표현조차 할 수 없도록 자기 몸도 못 가누는 아이지만 학교에 들어설 때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 없고 집에 가는 시간에 옷을 입히면 벌써부터 울고 소리를 지른다. 내게도 그 아이는 너무 이쁘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이쁘지만, 특히나 L의 그 웃음과 깊은 눈동자가 1년 후에는 어떨지 너무 궁금하고 만나고 싶다.


나의 봉사활동과 짧은 근무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앞으로 수업을 들으며 3번의 짧고 긴 실습이 있을 것이다. 그 실습과 수업이 기대되며 나의 진로도 기대가 된다. 해가 바뀌면 내 나이는 40대 중후반으로 넘어간다. 내 맘속엔 아직도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가족, 메이 선생님, 아이들이 참 고마운 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든 문제의 근원은 무례한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