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이민자의 삶

by Vanlomo

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가면 마주치는 가족이 있었다.

누가 봐도 성인남자 둘 그리고 돌이 안되어 보이는 여자아기.

한 남자는 유모차를 끌고 또 한 남자는 짐을 들고 따라간다. 매일 마주치다 보니 그들이 부부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벌써 7년 전쯤의 일이었다.


작년 새 학기가 시작된 9월.

우리가 킨더 때부터 유지해 온 what’s app 그룹 채팅방이 있다. 여기서는 ‘왓츠앱’이 한국의 카톡같은 어플이다.


“다들 인사해~ 새로 전학 온 A의 부모를 초대했어. “

라는 대화에 뒤이어,,

“안녕하세요? 저는 A의 아빠, 누구누구 입니다. 반가워요.” 그리고 바로 또 다른 채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A의 또 다른 아빠인 000 입니다.”


그러자 그 단톡방의 엄마들은,

반가워요~ 여기는 3학년 단톡방이에요. 환영합니다~ 등등 인사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아, 내가 봤던 그분들이 부부였구나.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 아니라 누군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누구인지 알 것은 같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LGBTQ+에 대한 호의가 역차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들이라고 해서 굳이 맘스채팅방에 초대를 해야 했지? 다른 아빠들은 초대를 안 하면서? 혹시 누구를 엄마로 지칭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을까?

스쳐 지나가는 궁금증이었을 뿐 누구에게 물어서까지 확답받고 싶은 것은 아니라 그저 지나갔다.


우리 이웃에도 할아버지 두 분이 함께 사시는 분도 계시고 여자 두 분이 사시기도 한다. 우리 아이에게도 너무 친절하고 좋은 분이며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라 그들의 삶에 큰 편견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캐나다 유아교육부터 어느 기관에서는 스스로 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3살짜리 생물학적인 여자아이가 머리를 자르고 He/Him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단다. 그리고 생물학적 남자아이가 치마를 입고 오는 것도 봤다.

과연 이 것은 어디서부터 온 논리일까? 더 놀라운 것은 레지던트를 시작한 의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에 강조하는 말이

‘환자의 겉모습을 보고 성을 판단하지 말라.’

’만 16세가 되면 성전환을 부모 동의 없이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해줄 수 없으면 수술이 가능한 의사를 소개해주는 것까지가 의사로서의 의무이다.‘

다방면의 직종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는 것은 시작에 불가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뉴욕에 오래 살고 있는 친구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아무래도 남편과 나는 그 부분이 궁금했다. 그들의 삶은 존중하지만 강요되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친구 부부의 의견을 물으니, 역시 우리보다는 훨씬 열려있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여러 가지 가정의 형태와 인간의 형태를 알려주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고 그것을 어색해하고 구분 짓는 가족이야말로 오히려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부모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친한 친구들만 예로 들어도,


A : 어머니가 분만하여 낳았으나 DNA는 다른 아이

B : DNA는 부모와 일치하나, 대리모가 낳은 아이

C : 동성의 부모가 입양한 아이

D : 부모 없이 할머니에게서 자라는 아이


이렇게 다양한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B라는 아이가 ”엄마도 나 낳을 때 배 많이 아팠어? “ 이렇게 물었을 때, 아직은 4살이라 거짓말로 말한다 해도 언제쯤 아이에게 사실을 말할지 고민하는 부모의 입장도 있고,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아이들은 우리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게 커갈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굳이 우리가 어렸을 때 학습으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삶이 정답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하듯이 더 많은 선택의 삶이 있는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아무래도 5지선다 문항 중 답이 1개인 단답형 문제보다정답이 4개나 되는 상황이라 부담이 더 적을까? 아니면 1개만 맞추면 되는데 여러 개 다 정답이라고 하면 더 이상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게 될까?


결혼, 가정 그 무엇이 맞는 형태라고 결론짓던 그 끝은 행복을 바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각자의 행복은 각각의 시작점이 다르 듯이 당연히 같은 길에서 시작하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도 생물학적으로 남녀를 구분해 놨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 나누어 놓은 것이지 65억 년 지구의 역사로 봤을 때 남녀의 구분이라는 것조차 인간이 만들어놓은 분류라고 (굳이 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다가가보자면) 이야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 무엇이 내게 맞는지 판단을 하기에 이른 나이에는 그것조차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소신껏 주장하고 싶다. 그 선택을 조금 더 커서 하더라도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라면 굳이 3-4살 때부터 아이가 다른 성을 선택한다고 호르몬주사를 맞히고 옷을 다르게 입히는 것이야말로 강요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 아이가 “엄마, 남자도 남자와 결혼할 수 있잖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응 그럼, 있지”라고 말을 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있겠지. 본인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처음에 주어진 성이 있어.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은 다른 선택하기도 해. “ 이렇게 간략하게 말하고 넘어가는데 아직 우리 아이는 주변에 없고 학교도 조금은 보수적이라 성교육에도 딱히 성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는 것 같아서 아이도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여기서 살면서는 인종, 성, 나이로 구분 지어지는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그 사람의 인상, 말투, 표정으로 ‘좋은 사람, 친구’로 인연을 이어간다.


아이에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30분 내에 바꿀 수 없는 외모, 언어, 피부색, 신체부위 등은 절대로 놀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이 말을 이미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종종 반복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내 아이도 좋은 사람을 그 사람의 분위기를 읽고 판단 수 있는 눈을 기르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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