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살이, 제가 괜찮다니까요?
밴쿠버의 집값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한국에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로 불리는 ‘콘도(Codno)' 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 말인즉슨, 주택의 개념인 ’ 하우스(House)'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는 한국인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껏 여기 머물러 살고 계신 가족은 딱 한 가족을 만났다. 그분에게도 여기 정착한 지 8년밖에 안된 나는 새댁이겠지만. 25년간 사시면서 한국인을 만난 적이 많지 않고 모두 단기로 머물다가 가셨다고 했다. 밴쿠버는 아는데 이 동네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어본다. “거긴 왜 한국인이 없어? 왜 잠깐만 왔다가 다들 떠나?” 그렇게 묻는데 대답하진 못했지만, 사실 답은 있다. 왜냐고? 집값은 고사하고 영주권, 시민권 아니면 집을 살 수도 없고 월세조차 방 2개에 한화로 400만 원은 그냥 넘어가니까.. “
이렇게 조용하고 자연이 멋진 곳에 살 수 있는 것은 시댁 식구분들이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정착하셨기 때문이다. 그 혜택을 나와 우리 가족이 누리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곳에 시댁에 있다? 그래도 시댁이라면 같이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또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니까.
처음 토론토에 터를 잡은 것도 시부모님께서 잠시 살고 계신 동네라서 근처로 결정했던 것이고, 밴쿠버로 이사를 먼저 오신 것도 시부모님이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따라다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어디 가서도 말 못 할 이야기가 바로 시댁자랑이다. “시댁부모님과 한집에 살아요.”라고 말하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양인, 특히 한국드라마를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들은 “괜찮아?”라고 먼저 묻는다. 정말로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도 ’ 나에겐 다 털어놔도 괜찮아.‘라는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마치, 내가 해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종종 생겨왔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께서도 걱정하지 않으시는데, 부모님의 친구분들 조차도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걱정 있을 거야.‘라고 늘 걱정해 주신다.
난 이런 의심의 말들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럴 수 있고, 실제로 나는 시부모님 없는 밴쿠버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니까 말이다.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시댁 운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나보다 어른들이 노력하시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나도 무례하게 다가오는 누군가에게는 무례하게 답할 때도 있다.
“한국인 없는 줄 알고 여기로 단기 유학 왔는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 반가워 “어머, 한국분이시죠? 반가워요.”라는 말에 너무나 차갑게 피하는 사람은 나도 바로 굳이 웃는 얼굴로 다시 말을 걸지 않는다. 이렇게 사람은 상대적이듯 시댁과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는 손윗사람의 태도가 결정짓는 경우가 많듯이 나도 그런 경우이다.
시부모님은 종종 내게 ‘우리 00이 같은 며느리 없다. 너도 분명 힘든 게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지만, 안 좋은 태도나 말은 금세 흐린 눈을 해주셔서 그런 걸 나도 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거라는 생각에 어머니를 대하기도 한다. 어머님의 성품은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 같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 부모님에 대한 존중이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결혼할 때, 시댁식구들과 친정부모님이 자주 연락하고 친하다고 말을 해도 “그거 길면 한 3년 간다.”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이제 10년이 지나 그대로인 상황에 더 이상 시댁과의 상황을 묻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축하하는 마음도 여유에서 묻어나는 것 같다. 집이 이렇게 좋은 곳에 있으니 으레 엄청 잘살고 부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검소하고 절약하며 살고 있다. 겉모습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동네가 바로 여기니까. 부는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말투와 성품에서 드러난다. 이 동네에서 이 정도 살아보니 그 품위가 바로 부의 상징으로 보인다.
집값은 아무리 높다 해도 대대손손 주식처럼 대물림되는 거지 소비하려고 하는 부가 아니다. 이 또한 시부모님의 절약정신과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배우는 가장 큰 자산인 것 같다. 우리 부부도 아이에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그 삶의 방식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것이 내가 시댁살이로부터 얻은 가장 큰 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