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한국 같지 않아

팀장님 잘 지내세요?

by Vanlomo

내가 한국에서 8년간 다니던 회사는 매년 정기적 인사발령이 나고 나면 새로운 팀장, 본부장 스타일에 맞춰 눈치게임을 하곤 했다.


이번에 오신 분은 00 대학 출신에 00라인이래.

와 그럼 누구 라인이겠네, 누구랑 동기인데 고속 승진했대. 야, 그 부장 그 밑에서 어떻게 일하냐?


초반 한 달은 바짝 상사 스타일 알아차리느라 메신저가 바쁘다. 그런데 새로 온 팀장님 엄청 깐깐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내 이름을 부른다.

“00 대리, 이 숫자 뭐죠? 근거자료 가져와요. “ 그렇게 대리의 시절 만난 팀장님과 3년을 함께 일했다. 그 팀장님은 기러기 아빠이다. 아침에 내가 출근할 때면 항상 캐나다에 계신 부인과 아이들과 번갈아가며 이야기하고 잘 자라고 말씀하시지만, 9시에 업무가 시작되면 내면의 다른 자아를 꺼내 듯 앉아서 날카로운 지적들을 하셨다. 실수한 날은 나도 날카로운 말들로 정곡을 찔렸지만 6개월 내에 마음은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누구보다 워라밸을 지켜주셨고, 남자직원이 많은 팀 내에서 내게 단 한순간도 불편하게 하신 적이 없는 분은 이 팀장님이 유일했다. 그렇게 시간이 3년쯤 흐르고 월요일 아침 회의 시간, 인사이동을 앞둔 시점, 팀장님은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께 가신다고 말하셨다. 너무나 이해가 갔다. 팀장님이 떠나시고 우리 팀원들은 다시 적응해 가며 팀장님을 그리워했다. 가끔씩 한국을 방문하실 때면 그때 우리 팀, 심지어 퇴사했던 분들까지 함께 모여 추억을 이어갈 정도로 좀 끈끈한 인연이었다. 시간은 흘러 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토론토에서 시차적응을 막 할 즈음에 아이를 아기띠에 안아 재우며 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팀장님, 잘 지내십니까? 저는 이제 막 토론토에 왔습니다.”

거의 3년 만의 뜬금없는 연락에 ‘연락처 좀 줘봐’ 답을 남기신 후, 번호를 보자마자 전화를 하셨다.

너무 반갑다면서, 아이 낳은 소식도 들었다며, 둘째 맞지? 하신다. 맞다. 우리 아이 말 안 하면 외동이지만 나에겐 둘째가 맞다. 첫아기의 중기유산 후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하는 바람에 뒤늦은 위로까지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조언들과 감사한 말들.

아이들과 함께 유학하며 사모님은 50세가 넘어 간호사가 되셨다고 한다. “한국은 간호사도 위계질서 깍듯하던데 여긴 한국 같지 않죠?”라는 물음에 팀장님께서는,


“여긴 뭐든 한국 같지 않아. 나 봐봐? 계약직으로 일해도 눈치 보는 거 없어. 모두가 동등하고 개인 스페이스를 지켜줘. 아이 좀 키우면 뭐라도 시작해. 캐나다에서 나이는 아무도 신경안 써. “

그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서 작은 불씨가 되어 꺼지지 않았다.


아이 학교 엄마들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어떻게 저렇게 일하면서 아이를 3시에 데리러 오는 거지? 저 아빠 분명 어느 회사 다닌다고 들었는데 아이를 항상 등하교시키지?


이 질문은 동양에서 온 이민자라면 꼭 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나는 영주권 프로그램에서 했었고, 학교에서는 중국에서 온 친구 엄마에게서도 들었다.


직장인 엄마가 이렇게 말해줬다. “회사는 고용자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해. 아이가 크면서 아픈 건 당연하잖아. 그러면 집에서 아이를 케어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분배해 줘. 남편이 2주간 출장을 가면 아이를 온전히 케어할 사람은 엄마뿐이니, 그 상황도 고려를 해줘야 해. “


와, 다른 세계다. 이게 가능하다고? 옆에서 듣는 동양권에서 온 엄마랑 질문 공세를 시작한다.

“그러면 이런 공백이 많을 걸 알고도 면접 볼 때 결혼했는지, 애는 없는지 안 물어본다고?”


“그건 개인 프라이버시야. 근데 대충 언제 고등학교 졸업했는지 물으면 답 나오고, 커리어만 봐도 아니까, 그 사람의 경력이 곧 신뢰인거지. 그리고 여긴 추천서(reference)가 강력하니까.”


나라에 아무리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천재가 많다고 한들 선진국의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인간이 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 돕는 게 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인데, 조금만 잘못되어도 불평하고 나 자신조차도 불만 투성이인 이 마음 아픈 나라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걸까?


한국에서 막 온 사람들은 캐나다에 불평이 참 많다. 나 또한 그렇지만, 불평을 할 뿐 분노하는 단계까지는 안 간다는 것이다. 최대한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 곧 서로를 너그럽게 만드는 것 같다. 불평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감정이 있는 서로 부대껴 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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