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에서 엄마가 되기까지
스물다섯 살의 어느 날, 나는 어머니를 잃었다.
한여름의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던 일요일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대학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단단아, 놀라지 말고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빨리 병원으로 와라.”
외삼촌의 목소리는 감출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장례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울며 애타게 엄마를 불러 보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7년 만에 나는 ‘천애고아’가 되었다.
이토록 짧게만 사랑을 주고 떠날 것임을 어머니는 미리 알고 계셨을까.
막내였던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 속에 자랐다. 그러나 이제 세상 어디에도 나를 존재만으로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만큼이나,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장례식 삼일동안 나를 지탱해 준 사람은 남자친구였다.
데이트 도중 함께 병원으로 달려 온 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장례식장을 지켰다.
위로의 말을 굳이 입에 담지 않았지만, 이른 새벽 영정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에서 그의 깊은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몇 년 후, 나는 그 사람과 결혼했다.
다정한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리며, 드디어 내게도 새로운 가족이 생긴 듯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이미 시댁이라는 원가족이 있었다. 부모님과 형제들 사이에는 오랜 역사와 추억이 이어져 있었고,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낯선 이방인 같았다.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레 가족이 생길 거라 믿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고아였다.
그해 겨울, 나는 임신을 했다.
열 달 동안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고,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가 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산후조리도, 아이 키우는 지혜도 전해줄 엄마가 내 곁에 없었다. 친구들이 친정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미역국을 먹으며 천천히 엄마가 되어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아이는 내 사정을 알 리 없었다.
밤낮없이 울고 보챘고, 나는 그럴 때마다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릴 때면 나도 함께 울고 싶었다.
하지만 서툰 내 품에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회사일이 오히려 육아보다 쉽다고 느껴질 만큼, 엄마로 사는 일은 버거웠다.
그래도 퇴근 후 아이 곁에 앉아 책을 읽어주던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매일 그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 날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졸려웠는지 눈을 껌뻑이다 이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작은 손가락이 내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 따뜻한 온기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위안을 얻었다.
‘그래, 이제 나는 고아가 아니라 이 아이의 엄마구나.’
그날 밤, 나는 어머니를 잃은 뒤 처음으로 외롭지 않았다.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가족이 찾아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