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전쟁

전라도식 김치와 평안도식 김치를 둘러싼 부부이야기

by 김단단

요즘은 김장을 하는 집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한 해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김장날이면 어머니뿐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우리 집에 모여 하루 종일 전투를 준비했다. 전라도 출신인 어머니가 과정 전체를 진두지휘했으니, 우리 집 김치는 당연히 전라도 스타일이었다.


전라도 김치란 무엇인가. 한국 사람이라면 마트에서 ‘전라도 00 김치’라는 글자만 봐도 손이 절로 가는 그 마법의 단어가 아니던가. 광주 출신 어머니의 자부심은 김장철에 최고조로 치달았다. “세상에 전라도 김치가 아니면, 그건 김치가 아니다.” 어머니에게 이건 명제였다.


전라도 김치가 맛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아낌없이 들어가는 해산물 덕분이다. 김장날 아침, 한쪽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절인 배추를 헹구는 동안 어머니는 젓갈을 다졌다. 새우젓, 황석어젓, 멸치젓, 꼴뚜기젓… 거기에 산 낙지, 굴, 심지어 생태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이러다 엄마가 사람만 빼고 모든 생물체를 김장에 넣는 건 아닐까?’ 만약 인근 바다에 사는 해양 생물체가 내 친구였다면, 그때 이렇게 전화했을지도 모른다. “야, 우리 엄마가 곧 널 찾아갈 거야. 어서 몸을 숨겨!”


이렇게 치열한 전투 끝에,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와 살을 수혈받은 어머니의 전라도 김치는 감칠맛이 진득하고 깊었다.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늘 예외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전리품 같은 김장김치를 못마땅해하셨다. 평안도 출신이셨던 아버지는 늘 평양식 김치의 맛을 그리워하셨다. 평안도 김치는 전라도 김치와는 만드는 방식 자체가 대조적이었다. 젓갈은 새우젓 한 가지만 담백하게 더하고, 통무와 파에서 우러난 채수와 사골육수가 어우러진 시원한 김치국물. 그것이 평안도 김치의 정수였다.

어머니의 김치가 밥상에 오를 때마다 아버지는 옆으로 치우며 고향 생각이 난다고 투정을 부리셨다. 십여 년 동안 이어진 풍경 속에서, 어머니는 “전라도 김치 맛도 모르는 평안도 입맛”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늘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오래 앓아누우셨다. 몸살 한 번 걸리신 적 없던 분이 감기에 눕더니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밥상 앞에 앉아도 숟가락을 들지 않은 채 한참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무심한 듯 한마디를 흘리셨다.

“시원한 김치 국물에 밥이랑 소면 말아먹으면 참 맛있겠다.”


어머니는 그날로 곧장 동네 평안도 출신 할머니를 찾아가 비법을 배워 오셨다. 김장철은 지났지만, 아버지를 위해 평안도식 김치를 따로 담그셨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아이처럼 장독대를 열었다 닫으며 김치가 익기를 기다리셨다.


마침내 김치가 알맞게 익자, 아버지는 찬밥에 살얼음 뜬 김치국물을 붓고 설탕과 참기름을 더하셨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두 번 휘저은 뒤 한입 가득 떠 넣는 순간,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평안도 김치도 전라도 솜씨로 만들면 다르지요?”

두 분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