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그녀

by 김단단

화장대 거울 속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웨이브 진 긴 머리를 브러시로 쓸어내리며, 그녀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거울 속의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애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방을 나온 뒤에도, 내 울음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첫 모습이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업을 하셨다.

늘 바쁘셨고, 그래서 나는 갓난아이 때부터 유모의 손에 맡겨져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유모의 집과 부모님의 집을 오가며 자랐다. 내 첫 기억 속의 어머니는 아마도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다시 유모의 집으로 돌아가던 순간의 기억일 것이다.


어머니가 바쁠수록 나의 어머니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은 더 깊어졌다.

늘 세련되고 화려했던 어머니는 의상실에서 가장 유행하는 옷을 맞춰 입으셨고, 아침마다 화장대 앞에 앉아 정성껏 화장을 하셨다. 그 옆에 앉아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패션을 좋아하셨던 것처럼 음악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큰맘 먹고 그 당시 부자집에만 있다는 최고급 사양의 스테레오 오디오를 마련하셨다. 영화 모정의 주제가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을 특히 좋아하셨는데, 턴테이블에 그 음반을 올리면서 “난 이 노래가 제일 좋더라.” 하며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 내가 길을 걷다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듣고 “엄마, 저 노래 듣고 싶어.” 하면, 어머니는 곧장 레코드 가게로 들어가 음반을 사 오셨다. 낮잠 시간이면 그 음악을 틀어 주셨고, 나는 선율에 감싸인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호사였다.


나의 유년기에 아버지는 이미 퇴직하셨지만 어머니의 능력 덕분에 우리 가족은 꽤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 나는 늘 좋은 옷을 입었고 서울에서 가장 맛있다는 음식들을 맛보며, 자연스럽게 미식과 멋에 대한 취향을 쌓아갔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그동안 쌓아 올린 부를 한순간에 잃으셨다.

우리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어머니는 아끼던 오디오마저 팔 수밖에 없었다.

눈이 내리던 그날, 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좋은 코트를 내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돈 버는 법을 아니까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절망의 순간에도 어머니는 늘 희망을 말하셨다. 그리고 정말로, 다시 빚을 갚고 집을 마련하셨다. 요즘 흔히 말하는 resilience, 회복탄력성을 나는 어머니의 삶에서 배웠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내 어머니라서 좋았고, 한 인간으로서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닮아 평범했다. 얼굴도, 성격도 평범했고 어머니처럼 대담한 추진력도 생활력도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무난하게 졸업했고,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했다. 어머니처럼 사업으로 멋지게 성공하지도, 대차게 실패하지도 않았다. 그럴 용기도, 능력도 내겐 없어 보였다.


그토록 강인하시던 어머니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내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무렵, 어머니는 마치 마지막 과업을 다했다는 듯 내 곁을 떠나셨다. 내가 어머니처럼 멋진 사람으로 보일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그렇게도 급하게 말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이십오년이 흘렀다.
나는 어머니처럼 사업가는 되지 못했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나이 들어갔다. 어머니만큼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하루하루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이모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어머, 얘 너 우리 언니랑 왜 이렇게 닮았니? 나이 드니까 똑같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가 엄마를 닮았나?’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주름이 자리 잡은 눈가와 입매가 어머니의 온화한 얼굴을 닮아 있는 듯했다.

나는 거울 속에서 하나하나 어머니와 닮은 점을 찾아본다. 눈, 코, 입….

그러다 문득, 기억 속 화장대 거울 앞의 그녀가 내 거울 속에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거울 속의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이제는 제가 엄마 좀 닮았나요?”


거울 속의 그녀가 천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이전글김치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