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그림자 - 2

아빠에게 처음 쓰는 편지 - 2025.7.29

by Inah힐데

오늘 아침 기분 나쁜 꿈을 꿨어.

아주 까맣고 까매서 눈동자까지 빈틈없이 까맣고 그 연약한 다리의 주름마저 너무 까만 검은 새 한 마리가 우리 집 발코니에 앉아 있는 거야.

앉아서 가만히 나를 보는데,

그게 꿈이라는 걸 알자마자 벌떡 잠에서 깼어.


거실로 나가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

전화가 한참이 울리고서야 아빠가 받았는데, 아빠 목소리가 힘이 하나도 없더라고.

나한테 자다 일어나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아빠.

내가 그걸 모를까?

너무 걱정돼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받더라고.

아빠가 요즘 너무 힘들어한다고.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서 우는 엄마를 보고 속으로 다짐했어.


내가 아픈 건 엄마도 아빠도 속일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속여보자.

이제 겨우 항암 5차를 시작한 건가?

5,6차 때가 제일 힘들다더라고. 나도 잘 몰라. 그냥 여기저기서 주어 들었어.

그때만 잘 넘기면 된다고 힘내자고.

엄마랑 아빠를 겨우 달래 놓고 전화를 끊었어.

그리고 난 출근을 했지.


병원에서 나도 빨리 항암을 시작해야 한다는데..

나 사실 겁이 나.

나 지금 아프지도 않거든. 혹시 오진이 아닌가 싶을 만큼.

그런데, 나도 조금은 흔한 암종이 아니라 치료 방법 선택지가 별로 없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화학적 항암도 하고 수술도 하고 방사능 치료도 해야 한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데,

일단 시작하면 내가 비행기를 타고 언제 아빠를 보러 갈 수 있을까.

내가 치료받을 때 아빠가 갑자기 위독해지면 어떻게 하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면 그걸 얼마나 더 아빠에게 숨길 수 있을까.


아빠.

선고받은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아빠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아빠한테 이런 이야기 다 하고 싶은데,

지금은 참을게. 그게 맞는 것 같아.

아빠도 다 낫고 나도 다 나으면 이 이야기도 끝이 나 있을 거야.

그때 아빠에게 보여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잘 이겨내 보자.

아빠.

진짜 많이 많이 사랑해. 잘 알지?

지난주 일요일에도 내가 영상통화할 때,

개방정 떨면서 귀가 닳도록 말했잖아.

딸이 많아도 개방정 떠는 딸 나 밖에 없다며 어디서 나왔냐고 그랬잖아.

아빠한테서 나왔지.


한 1,2년 뒤쯤에는 아빠가 이 편지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

같이 힘내보자. 아빠.


매거진의 이전글찬란한 그림자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