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의 그림자
이야기는 한낱 신세한탄이나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냥 삶의 양면성이 가진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 졸업 때까지는 내가 살아온 시간은 비교적 평범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무척 힘들었지만, 그걸 다시 돌이켜보면 다른 시절에 비해 그나마 보편성에 수렴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잘 모르겠다.
걷다 보니 진흙길이었고, 지나 보니 자갈밭이었다.
자갈을 헤치며 가다 보니 길이 끊겨 있었고, 겨우 이어 붙인 길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마치 공중곡예처럼 그렇게 살아냈다.
불만도 불평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조금 다를 뿐, 나만 겪는 유일함이라 생각지 않았고
유일하다고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다름이 내게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올해 초였을 까.
오랫동안 미뤄왔던 낙후된 화장실 리모델링이 끝나면서 일상이 놀랄 만큼 평화로웠다.
날씨도 독일스럽지 않게 좋았고 매일이 해가 내렸고 이른 산책으로 거리에 활기가 가득했다.
몇 해를 괴롭혔던 난임의 시간도 내려놓으니 새로운 길도 보였고, 일도 자리를 잡아갔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완벽했다.
사소한 걸로 투닥대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해”를 아낌없이 주고받는 13년 차 부부.
더없이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이 문득 생경했다.
불안할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에 벅찼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스쳤다.
그 무렵,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느끼고 있었다.
사건은 꼭 그런 순간에 시작된다.
클리셰도 진부함도 아니다.
태양을 마주 보면 내 뒤에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분명 존재한다.
태양을 바라본 채, 직접 그 뒤를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 공존하고 있다.
그 그림자.
모두의 그림자.
어둠 속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여 특별할 것 없는 모두의 그림자,
여명 속으로 어둠이 사라지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면 더욱 분명해지는 나만의 그림자.
아무 준비도 없이 난데없이 내 그림자를 마주해야 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밤은 다시 오고 내일은 또 시작된다.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흐리고 지나버리니까.
분명 어둡고 음침한 낯선 이 그림자도, 내 것이라는 그림자 속에 선 나도,
이 시간들에도 지나고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분명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늘은 춥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원하기도 하니까,
용기를 내어 이 스산한 그늘을 마주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