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그림자 - 4

새로운 바람 2025년 10월

by Inah힐데

나보다 3개월 먼저 담관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시던

아빠가 별이 되신 지 오늘로 한 달 정도 지났다.


7월에 암 진단을 받고 8월 말부터 나도 선항암을 시작했다.

한국과 다르게 독일에선 중간 점검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진 않는다.


선항암 중간 점검에서 나의 경우엔,

CT 나 MRI 전혀 찍지 않고 초음파와 피검사만 시행했다.

전이된 암을 포함해 원발암까지 모두 위치가 나쁘고

워낙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자가공명 MRI 외에 다른 검진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초반처럼 중간 점검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암이 더 커지지 않았으며,

주변에 다른 장기로의 추가 전이도 없고

갑상선 기능은 망가졌지만 약으로 해결가능하다.

무엇보다 어찌 됐든 크기가 초반보다는 작아졌다는 것.


의사가 말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당신이 처음 받은 진단 내용입니다.
당신만 잘 싸우고 이겨주면 다 지나갈 거예요.


부끄럽게도 나는 오늘에서야 내가 암환자라는 걸 받아들였다.

치료를 시작하고 온갖 부작용에 시달려 놓고 석 달이 지나고

이제 와서야.


내가 왜? 왜 하필 나야, 이런 생각을 줄 곳 했었나 보다.

나 역시 항암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까.


암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문득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까지.


외할아버지 간암.
셋째 삼촌 간암.
넷째 삼촌 외항 실종사.
막내 이모 급사고사.
둘째 이모 당뇨.
친할아버지 실족사.
친할머니 대장암.
큰언니 남편 급사고사.
우리 사랑하는 아버지 담관암.
그리고 나.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우리 가족 중에서

부디 마지막이길.

최소한 우리 자매 중에서는

마지막이길.

오늘 빌고 또 빌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족 중에 누군가 또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새로운 고통을 마주하고

불안한 시간을 받아들이며

매일 낯선 싸움을 이겨야 하는

몹시 외롭고 힘든 나와의 싸움.


이게 맞나? 이게 무엇인가?
치료가 되고 있는 것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차라리 다 그만둘까? 그건 아닌가?
끝나긴 할까? 전이된 건 아닐까?
재발하면 어떡하지? 잠은 왜 안 오지?
다음 부작용은? 이러다 까무룩 죽는 건 아닐까?
나아지고 있긴 하는 걸까?


수없이 터져 나오는 물음표 무덤.

대답 없는 질문의 뫼비우스.

그 사이 어딘가에 표류해 있는 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형부를 잃고

혼자서 하나 있는 딸 키우느라 고생만 우리 언니.

이제 본인 노후만 준비하면 되는 언니가 아프지 않고 나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고생하며 작고 여린 셋째는

아직 어린 둘째와 한참 케어가 필요한 딸이 있기에 셋째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늦은 결혼으로 아직 너무 어린아이를 키우는

제일 여리고 맘 착한 막내가 아픈 게 아니라,

내가 아파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안다.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거.

누구도 아프지 않으면 더 좋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양가집안 가족력도 있고

언젠가 누군가 아파야 한다면

내가 제일 만만하다 싶었다.


나 역시 그동안 평온하고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지만

난 아이도 없고 사랑스러운 남편도 있고

내 일도 있고 따뜻한 시댁도 있고

어쨌든 암선고 전에는 비교적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었으니.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

남편이 이 고통을 몰라서 다행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뜰하게 챙겨줘서 다행이다.

과연 나도 남편처럼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정말 모르겠다.


평생을 일하고 이제 은퇴하신 지 얼마 안 된

이제야 노후를 즐기시는 세상 멋지고 사랑스러우신

시부모님이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고

아직 어린아이들이 둘이나 있는 시누네 부부가 아픈 게 아니라서

또 너무너무 다행이다.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

나여서 정말 다행이다.


암이 내게 온 이상, 완전 관해를 하더라도

과연 재발과 전이 대한 걱정과 공포에서 완전 해방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이제는 정말 괜찮다.

누군가 아파야 한다고 묻고 암을 준다 했어도 나는 기꺼이 내가 받겠다고 했을 것 같다.


내 바람은 지금, 더 오래 살고 싶다가 아니다.

우리 가족 중에서 내가 마지막 암환자 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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