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의 닻 2025년 11월
여자만 넷인 집안에서 나는 두 번째로 태어났다.
막내와 나는 다른 자매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중성적인 외형이었고 언니와 셋째는 누가 봐도 여자여자했다.
특히 셋째는 인형처럼 예뻤다.
내 기억에 엄마는 맞벌이로 늘 집에 안 계셨고
네 딸을 씻기고 돌보는 것도 버거워하셨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나와 막내의 머리는 늘 커트와 단발이었다.
머리를 예쁘게 땋고 포니테일 하고 변신하는 언니와 동생을 보면서 언제나 강력한 부러움이 일렁였고 긴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이 마음속 깊이 닻을 내렸다.
두발 자유 고등학교 들어가면 길러도 좋다는 엄마와의 약속.
엄마는 약속을 지켰고 중학교 3학년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후로
딱 한번 20대 중반에 중단발을 했고 언제나 허리까지 긴 머리카락을 유지했다.
조금이라도 내 상상이나 예상을 벗어나면
미쳤나 싶은 분노가 들끓어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용실도 25년째 같은 곳이다.
그냥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분신이었다.
동생들도 그런 내 집착을 알기에
내가 항암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탈모 부작용을 걱정했다.
나 역시 탈모 부작용이 제일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생각보다 허무하게 나는 자유로웠다.
추풍낙엽처럼 도리질 한 번에 우수수 날리는 머리카락.
고개 한번 숙여도 힘없이 흩뿌려졌고 동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보다 더한 부작용으로 온몸이 부서지고 괴로워 탈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착은 온데간데없었다.
빠진 머리카락이 외려 내게 집착하여 달라붙어 있는 듯 몹시 불편하고 귀찮은 지경이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민머리가 되었다.
집착은 그랬다.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진대,
무엇에 홀린 듯 얽히고설켜 붙들고 있었다.
이쯤 되니 중요했다고 여겼던 수많은 것들에 의미는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로 인해 부여된 가치였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2025년 여름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면서..
천천히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됐고
어쩌면
내게 남은 시간이 다른 사람들 보다 짧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모든 생각과 계획의 돛이 방향을 바꿨다.
내가 살고 싶던 삶을 살기로 과감하게 마음을 바꾸고 방향을 정하자,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가 더해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변하고 있다.
집착이라는 닻은 어쩌면 돛보다도 가벼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