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그림자 - 7

아빠를 닮은 딸

by Inah힐데

첫눈이 내린다.

회색빛 하늘이 하얀 눈으로 세상을 덮어버린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 들고,

강아지들은 뭐가 좋은지 뛰어다니며 짖어 댄다.


아빠는 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하여 여기저기 거래처를 다녀야 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오면 아빠는 언제나 내 방문을 벌컥 열고 소리치셨다.


똥개야. 밖에 눈 내려. 눈.


아빠가 하늘에 별이 된 지 아직 세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일까.

내리는 눈을 보고 있는데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똥개야.


나는 자칭 아빠를 닮은 딸이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예쁘장한 미모를 자랑했던지라 외적으로는 닮지 않았지만 식성이나 성향으로는 내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해서 집에 가져가면 온 식구들은 입맛이 이상하다며 핀잔을 주기 바빴다. 아빠만 신나서 드셨다.

아무도 손을 데지 않으니 우리만 먹을 것 많아서 좋다며 식구들의 야유 속에서 아빠와 나, 둘만 신났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내가 먹고 싶은 간식을 바라바리 양손을 무겁게 귀가했다. 주로 시럽이 들은 달콤 쫀득한 꿀떡이나, 크림이 잔뜩 들은 빵을 샀다.

가끔 옛날 과자 트럭이 보이면 양과자도 두 봉지 샀다.

뭘 이런 거 사 오냐며 가끔 볼멘소리 하셔도 언제나 자고 일어나면 보이는 빈 포장지에 괜스레 뿌듯하곤 했다. 그리고 꼭 쥐어주시는 간식 값.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나는 아빠의 식성만 닮은 게 아니었다.

아빠와 나는 유전적으로 닮았다.

아빠는 평생 소음 속에서 일하셔서 원래도 좋지 않은 청각이 나이 들면서 더욱 악화돼서 잘 듣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아빠와 대화할 때는 큰소리로 말하고 더 잘 들리는 귀 쪽에서 말해야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면 식구들은 모두 일부러 그런다고 어이없어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그런다.

나도 아빠처럼 식구들의 핀잔을 듣는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답답해하셨지만 나는 그런 아빠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암을 진단받고 전이 여부를 위해 전신 검사를 했다.

그때, 청각 검사도 했는데,

전반적으로 평균 이하로 들으며 한쪽 귀는 조금 더 나쁘다는 소견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빠질 수도 있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소견을 듣고 나오다 문득 눈물이 났다.

청각이 나빠질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빠를 닮아서 아빠를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빠 닮아서 내 피부는 하얗고

아빠 닮아서 나도 잘 못 듣고

아빠 닮아서 머리카락도 가늘다.

아빠 닮아서 나도 암에 걸렸을까...


아빠가 좋아했던 홍시를 먹고 싶어서 홍시를 사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떡이 너무 먹고 싶은데 서러워진다.

만둣국을 끓이다가 눈물이 나고 양과자 트럭이 보이면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여전히 아빠는 모든 순간에 있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은데도 아빠 사진을 차마 꺼내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을 보니 눈이 내린다. 첫눈이다.

아빠는 눈을 싫어했지만, 눈 오는 날은 꼭 나를 불렀다.

눈이 온다고.


회색빛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린다.

아빠의 기억도 내린다.

문득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덮은 회색들이 하얀 눈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리면 강아지는 뭐가 좋은지 뛰어다니며 사람들은 웃고 사진을 찍는다.

사이에서 그 낭만을 나는 가만히 지켜본다.


내일, 어쩌면 그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해가 뜰 테다.

해가 뜨고 하얀 세상이 다시 투명해지면 회색빛도 사라지고 없을 게다.

그리도 다시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또, 언젠가 눈이 다시 내릴 거다.

그때마다 아빠 생각에 울고만 있다면 별이 된 아빠도 좋아하지 않겠지.

오늘은 회색일지라도 내일은 분명 빛이 세상을 다시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그리움을 삼킨다.

아빠 보란 듯이 내 암이 사라지면 그때 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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