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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Sep 03. 2016

슬픔과 아픔의 크기

사람들이 가진 삶의 무게

"야!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살다 보면 그거 별거 아니야. "


내가 언젠가 적어도 한 번은 들었던 말,

그리고 언제나 내가 무심코 내뱉어버린 말.

그것은 참 이기적이고 은근히 잔인한 말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다.

사람들이 가진 삶의 무게가 곧 그 사람의 아픔이고 슬픔인데,

그것을 누가 더 아프고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에 비교하는 것조차 비교 대상이 바뀌면 결과치가 바뀌는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거나 슬픈 사람을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너는 나에 비하면 행복한 거야!"


고3이 수능을 망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 위해 벼랑 끝에 섰다.

대학생이나 회사원이 보기에, 좀 더 나이 먹은 어른들이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지나온 길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3은 모른다. 당장 그에게 시험을 망친 것이 그가 사는 세상의 전부이다.

그래서 고3의 슬픔과 좌절은 어마어마하다.

내가 아무리 큰 아픔의 시간을 지나왔다고 해서 타인의 슬픔을 재서는 안되며 비교해서도 안된다.

모두가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 그가 사는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자신이 없다면,
어쭙잖은 위로보다 차라리 모른 척해주는 편이 낫다.



사랑은,

유형의 것이 아니기에 크고 작음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랑이 가진 본질은 모두 같아도 분명 양질의 차이는 존재한다.

누군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

'좋은' 감정이 가진 양질의 차이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슬픔'이나 '아픔'에도 그 잣대를 들이댄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성격, 수많은 것들이 다르기에 사람마다 견디어 내는 능력치 또한 다르다.

어떤 일을 받아들이거나, 해결해가는 능력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느끼고 해결해가는 과정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알아보면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람 없다.

내 경험을 잣대로 다른 사람의 슬픔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였고 그 누군가는 또 언제가 우리였거나 우리가 될 것이다.

생각 없이 내뱉은 오지랖이 한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영원히 닫버릴 수 음을 알아야 한다.


  행복을 느끼는 것 아픔을 느끼는 것, 그 모든 것은 상대적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판단하기에 그 기준이 참 모호하다.

  그냥 모든 아픔이 그 사람에게 가장 버거운 삶의 무게이고 고통의 시간이다.

누구에 비할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 위로가 필요하고 지친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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