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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니쉬 Nov 17. 2020

멈추고서 깨달은 것들 6

연봉협상 과정

우와, 드디어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처음에 이 시리즈를 계획했을 때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편씩 써서 한달 반만에 시리즈를 완성하려고 했었는데...! 글을 올릴수록 다음엔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면서, 새 글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게 되고, 그러다 결국 두달을 넘겨 시리즈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첫 시리즈를 완주한 것에 스스로를 칭찬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잘 쓰고싶다는 욕심과 잘 써야한다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고, 부족하더라도 꾸준히 써내는 것에 더 의미를 두자고, 다시금 다짐해본다! 


오늘은 내가 연봉협상을 어떤 과정으로 했는지 정리해보려 한다. 벌써 두달이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려는데, 이를 정리해두면서 그때의 감사가 되살아나고 그 감사가 글에 잘 담겨지길 바란다. 




목차


삶에서의 깨달음

- 하나님의 타이밍

- 안식

- 다양한 시각의 중요성 (feat. 의사 파업 사태)


커리어 관련 깨달음

- 회사생활의 가치

- 크리스쳔 사업가의 마인드

- 연봉협상 과정



나는 지금껏 세 회사를 다녔는데, 첫 두 회사는 대기업이었고, 세번째 회사는 CEO와 HR매니저 외엔 내가 첫 직원인 매우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세번째 회사가 내게 처우 수준을 제시할 때, 상장 계획이 없어 스톡옵션은 없지만, 기본 연봉의 35% 수준 인상과 연봉의 최소 10% 인센티브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연봉 협상에 대해 상담을 요청드렸던 선배 동료는 작은 스타트업으로의 이동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스톡옵션 없는 이 정도 인상률은 부족하다고 평가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일하면서 배우고 싶은 분야(머신러닝, 금융)를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성장의 측면을 가장 우선하는 한편, 대기업의 편안한 상황에 안주하고자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한 차에 내겐 안주하지 않을 용기가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때 나는 스타트업의 리스크로 회사의 불안정성 - 회사가 언제든 망할 수 있는 점 - 만을 고려하였는데, 사실 생각지 못한 리스크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기업은 현재 하는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회사 내에서 보다 나와 맞는 역할을 찾아 옮길 기회가 있지만, 작은 회사는 아주 좁은 분야만을 다루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일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폭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나는 이 리스크에 걸려 퇴사를 하였다. 재밌게 보이던 일을 막상 해보니 내겐 그리 흥미롭지 않았는데, 내가 그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버티며 그 일을 해내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스타트업의 리스크엔 회사의 불안정성뿐 아니라 내 흥미의 불안정성도 포함된다. 연봉협상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지만, 이직과 관련하여 중요한 깨달음이라 남겨둔다.) 


나는 세번째 회사를 그만둔 뒤 5개월쯤 지나서, 두번째 회사의 동료이면서 그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Y 언니의 추천으로 두번째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 (즉, 재입사 원서인 것이다). 그 후 두달 반동안 2 번의 기술 면접과 1 번의 임원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하였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1차 연봉 제안을 받기 전, 나는 연봉 협상 전략에 대한 블로거와 유투버의 조언을 찾아보며, 내 마음 속 연봉 최소 수준을 정해보았다. 당연히 최근 받았던 연봉보다 인상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나의 두번째 회사는 연봉을 '후려치기'로 꽤 악명이 높아서, 연봉 인상에 대한 기대는 비우고 당시의 전년도 연봉, 즉 스타트업으로 이동할 때 제안받은 기본급을 내 마음 속 최소 수준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막상 1차로 제안받은 연봉은 마음 속 최소 수준에 꽤나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 제안을 보았을 때 처음 들었던 감정은 억울함과 분노였다. 회사가 내 능력에 맞는 연봉을 제안한 게 아니라, '경력 단절의', '임신한', '여성'이라는 나의 사회적, 생물학적 위치를 고려하여 내 능력에 비해 훨씬 낮은 연봉을 제안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마음에 '어짜피 내 최소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연봉, 수락하지 말자'며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지만,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렇게 홧김에 결정할 수는 없게 만들었다. 이 회사 외에 채용이 진행중인 곳도 없었고 사업을 준비하곤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못해 수익이 없는 상태인데, 당장 올해 말에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내년 4월부터 당분간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연봉 협상이 나의 뜻대로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자, 그제서야 나는 혼자서 연봉 협상을 하려던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먼저 나 혼자 결정했던 나만의 연봉 최소 수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나님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 제안에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 회사가 이러저러한 사회적 꼬리표로 나를 제단하고 나의 능력을 평가절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가 정말 그러한 꼬리표들로 나를 차별한 걸까? 사실 그것은 내 짐작일 뿐이다. 정말 내 능력대로 평가한 것일 수도 있긴 하지. 그리고 내 짐작이 맞아 능력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평가가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외부의 평가가 진짜 내 가치는 아니니까. 하나님은 이미 나를 특별하고 존귀한 걸작품으로 지으셨고, 어떤 이의 평가도 나의 이 고유한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회사의 평가가 내겐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졌고, 억울함과 분노가 가라앉았다. 


차분한 마음으로 1차 제안 준 연봉이 나의 최근 연봉보다 낮은 구체적 이유를 인사 담당자에게 물었다. 인사 담당자는 연차별 연봉구간이 정해져있다는 모호한 답변과 함께 추가적 인상이 필요한 이유를 내게 물었다. 나는 추가적 인상이 필요한 이유로 내가 전하고 싶은 세 가지를 빠짐 없이 정리하여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전하였고, 원하는 연봉 수준을 제시했다. 돌아온 2차 연봉제안은 1차보다 약간 높아진 수준이나 여전히 처음 생각했던 최소 수준보다 낮았다. 인사 담당자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의 '리스크를 연봉으로 보상해주는' 페이 수준을 맞출 수 없다고 설명해주었다. 인사 담당자의 설명은 분명 명쾌했지만, 나는 이 연봉을 받아들일 나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인사 담당자에게 다음날까지 수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변하고 고민을 시작했다.  


1. 수요예배 말씀

마침 2차 연봉 제안을 받은 날이 수요일이라 저녁에 온라인으로 수요예배를 드렸다. 수요 예배는 야고보서 2장 14-26절 말씀이 본문이었다. 이 날 목사님은 영혼 없는 웃음이나 리액션이 있듯이, 믿음에도 영혼이 실린 믿음과 영혼이 없는 믿음이 있고, 영혼이 실린 믿음은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목사님은 야고보서의 이 본문은 행위가 의로움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의롭게 하지만,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럼 과연 '행함'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이 주신 '설명서'대로 사는 게 그 행함이었다. 설명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미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고, 그러니 이 땅에 안주해 살지 말라고. 야고보는 이 설명서대로 사는 예시로 아브라함과 라합을 제시한다. 아브라함은 설명서가 잘 납득되지 않는 순간에도 설명서대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부터 설명서대로 살면서 '설명서가 맞구나'라는 걸 누적하여 깨달았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라합을 말할 땐 굳이 이름 앞에 '창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는 종교 지위자, 종교 엘리트와는 차별화되는 단어이다. 그가 이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설명서대로 사는 게 지위와 신분보다 중요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연봉 협상과 관련하여 설명서대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수요 예배 후 사람들의 나눔을 들었다.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설명서대로 사는 삶은 은혜로 사는 삶이고, 은혜가 내 삶에 흐를 수 있도록 여지를 두는 삶이 아닐까?' 내가 처음 생각한 최소 수준의 연봉을 받으면, 물론 남편과 내가 둘이 벌었던 때보다야 부족하지만, 대출빚을 조정하지 않고 생활비와 육아비를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2차 제안을 수락한다면, 대출빚을 조정하거나 추가로 사업 수익이 나지 않으면 우리 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이 상황이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흘러갈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QT

수요예배때 2차 연봉을 수락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정도 들긴 했지만, 좀 더 확신을 갖고자 다음날 QT 시간에도 연봉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갔다. 이 날 본문은 야고보서 1:19-27 이었는데, 27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27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세속에 물들지는 않으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려면, 이 정도 수준의 연봉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좀 더 많이 받아도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쩝 ㅎㅎ).


3. 커리어 우선순위 정하기

이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함께 내 마음의 우선순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워렌 버핏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으로 돌아보았다. 먼저 커리어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을 25가지 쓰고 (나는 25가지나 생각나진 않아서 쓸 수 있는 만큼 적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5개 뽑은 뒤, 뽑히지 않은 나머지는 생각하지 말고 오직 뽑힌 5개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먼저 아래는 생각나는대로 적어본 내 커리어상의 목표들이다:

경제적 안정성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의 경험 (도메인 지식, 머신러닝 모델링, 빅데이터 엔지니어링, 확률 통계 지식)

개인 사업체 만들기

하나님의 은혜로 설명되는 삶

회사에서 제공하는 어린이집 (아이에게 좋은 보육 환경)

성실함의 훈련
- 먼저 다른 사람의 order를 잘 파악하고 이행하기
→ 내가 나 스스로에게 order를 주는 훈련
→ 나아가 다른 이에게 order(offer)를 주는 훈련
- 한 일터에서 최소 2년 이상은 있어 보자! 

겸손함의 훈련
- '내 의견이 가장 옳다. 나는 틀리지 않는다'는 교만함 버리고
 -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 속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 무시하지 않기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며 일하는 즐거움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는 훈련

다른 사람의 지식,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

인적 네트워크 (& 사람들에게 받는 긍정적 자극과 도전)

근무할 공간
- 공간의 분리가 내 생산성에 꽤 중요함
- 하지만 재택근무 대비하여 훈련되어야 하기도 하겠다.

경력단절의 중단

여성, 양육하는 개발자로서의 분투. 훗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양육자로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경험들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 찾아가기,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


이 중 내가 뽑은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순서가 순위를 뜻하지 않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의 경험 

개인 사업체 만들기

하나님의 은혜로 설명되는 삶

성실함과 겸손함 훈련 (따로 적었으나 인격의 훈련으로 묶었다) 

여성, 양육하는 개발자로서의 분투. 훗날 후배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경험들 


내게 중요한 커리어상의 목표 5가지를 고르고나니, 경제적 안정이 내겐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은 연봉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갈 기회를 만들 수 있다 (3번째 목표). 또한 현재 해당 회사에서 제안한 역할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역할이고 (1번째), 4번째와 5번째에 적은 목표는 어떤 회사든 소속되어 일하면 훈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니 아쉬운 마음이 온전히 덜어지고 2차 연봉을 수락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만, 나는 2번째 목표인 개인사업체를 만들 수 있는 지 여부와 5번째 목표와 밀접한 12월 출산 휴가 및 내년 4월까지의 육아휴직이 가능한 지 확인이 되어야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인사 담당자에게 이 두가지를 물어보았다.


첫번째 질문은 사실 원서를 접수하기 전 Y 언니를 통해서 이미 확인을 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짚고 넘어가기 위해 한번 더 물어본 것이다. 역시나 책임 리포트 상신 후에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놀라운 것은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인사 담당자는 9월 중 입사하여 12월부터 휴가를 갖는 것은 업무 연속성이 많이 떨어지니 내년 4월에 입사일을 조정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었다. 사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계획대로 쓸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입사하자마자 재택근무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동료들과 오프라인으로 잘 만나지도 못하는 마당에, 3개월 정도 일하다가 휴가를 가야 한다면, 동료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기 어려울 거라 걱정이 많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정말 중요한데, 처음에 관계를 잘 맺어놓지 못하면 복직 후에도 관계 맺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이다. 게다가 3개월 동안 업무에 적응만 하고 휴직을 하게 되면, 휴직 하는 동안 받게 될 급여에 대해서도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입사일 연기 제안은 내게 너무나 반가운 제안이었고, 감사함으로 이를 수락하였다! :) 




연봉 협상 과정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며 진행할 수 있었고 그래서 후회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외부의 평가가 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기에 그 평가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며 그 평가에 분노할 필요가 없음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이걸 자꾸 까먹곤 하지!). 오히려 이렇게 나에 대한 낮은 평가에 분노하며 아파했던 경험도,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지금은 감사히 여긴다. 수요예배와 QT, 그리고 우선순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갈 여지를 두는 삶을 소망하게 되고, 내 마음에 있던 조금의 아쉬움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특히 생각지 못한 입사일 연기라는 제안도 받았으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마무리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어 나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욱 자라길 소망한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이 일하실 걸 기대하며 기뻐하는 수준에까지 자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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